문화의 변천에 따라 상례는 물론이고 도덕적 표현행동이 전과 금르게 변질되어 나타나고 있다. 대통령에 대해서도 그 직무수행이 국민의 일반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는 지나친 평가적 자유표현을 하는 것을 보면 절대군주 시대에 가졌던 임금에 대한 마음가짐과는 그 바탕이 현저하게 다름을 느끼게 한다. 부모를 섬김에서 있어서도 구로지은을 마땅히 갚아야 한다는 선인들의 보본행동과는 확연히 달라 효의 실종적 행동들이 마음 아프게 한다. 부부관계 역시 '여보(余寶)', '당신(當身)'이라는 칭호처럼 '너는 보배'요, '자기의 몸'이라는 존귀하고 소중한 가치를 지닌 일인칭적 존재라는 것을 망각하고 무분별한 비하의 일부 표현들이 일반화 되는 것 같아서 걱정스럽기도 하다.  충효열에 대한 절의의 변질은 영원한 사회적 생명에 대한 가치를 소중히 여겨야 하는 자극을 주고 있어서, 지난 시대에 소중한 목숨을 나라와 부모와 지아비를 위해 바쳤던 옥구 이씨 이희룡가의 삼강사적은 경주의 여러 사적 가운데 특별한 감명을 주기에 밝혀보고자 한다. 이희룡은 임란 때에 사헌부감찰로서 몽진하는 선조를 호종하며 의주에 갔다. 이때 영남의 적정과 전세를 살펴보고 오라는 왕명을 받고 경주와 울산 등지의 정세를 탐지하고 돌아가던 중 충주 달천에서 왜적을 만나 단신으로 '왕명재신(王命在身) 신불가욕(身不可辱)'이라며 싸우다가 많은 적을 쏘아 죽이고 41세의 나이로 장렬히 순절하고 말았다. 아들 이문진은 아버지가 순절했다는 소식을 듣고 복수하기로 맹세하면서 시신을 찾으려 달려갔다. 영천 신령에 이르자 적들이 길을 막았다.  "왜적은 바로 임금과 아버지의 원수로서, 한 하늘 아래 같이 살 수 없다." 하고 싸우다가 역시 전사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이문진의 아내 김씨는 통곡하면서 "시부는 충으로 돌아가시고 남편은 효로서 죽었으니, 나의 죽을 곳을 내 스스로 알 것이다."하고 도보로 전쟁터에 갔다. 손수 지은 침선으로 염하려고 시신을 석 달간 찾았으나 끝내 찾지 못하자 돌아갈 면목이 없다하여, 남편의 유의로 합장시켜 달라고 여종에게 유언을 남기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리하여 '절효충렬삼강구비지문(節孝忠烈三綱具備之門'의 은전을 받아 일가삼강을 이루었다. 사람의 목숨은 귀천을 막론하고 소중한 것이다. '인생일사불부환'이란 말처럼 한번 가버리면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재생 불가능의 일방적?숙명적 궤도운명이다. 외침을 당하여 구국을 위해 소중한 목숨을 바친 충신의 충의라든가, 부모의 구로지은을 갚고자 애쓰는 효자의 효의며, 해로동혈의 언약 지키기 위해 불경이부의 단심으로 어려움에 처하여 죽음으로 정절을 지킨 열부의 절의 등은 모두가 상대방을 위한 자기의 외로운 희생이며, 자아를 포기한 극단의 아픔이다.  충신 증 통정대부 호조참의 이희룡가의 삼강절의는 외진 산자락에 조용히 숨어 지낸 은사처럼 빛 바래지지 않았으나, 한 집안의 양세에서 삼강정려의 은전이 내려졌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존숭할 사적이다. 당시로 볼 때는 나라를 위해 한 가정이 멸문을 당할 정도로 처참 했으나, 그 절의는 고관대작이 되어 일생의 영화를 누렸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보국위민이며, 보본절의며 불후의 정절이라 할 것이다. 이를 현창하여 영원한 생명의 가치가 어떤 것인가를 깨닫게 하는 것은 북핵문제로 국민의 안위가 걱정되고 있는 현실에서 볼 때 국가사회와 가정이 바르게 정립될 수 있는 이념을 구축하는 것이라 생각되어 이런 존귀한 희생에 대해 국가가 외면하지 말고 현창 사업을 전개하여 교육의 장으로 보전되기를 바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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