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지지율이 역대 정부에 비해 크게 앞서고 있다. 이는 국민들이 대한민국 제2의 부흥을 요구하는 열망이 있기 때문이다.그래서 폭염 속에서도 문 대통령에게 신뢰를 보내는 것이다. 특히, 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 및 미 의회 지도자들과 양국 현안인 사드 논의에대해서도 별 무리 없이 처리하는 등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국내 최대현안인 탈 원전에 대해 귀국 후 재고할 지 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문 대통령은 야당 시절부터 원전의 안전성(安全性)을 강조하면서 '탈 원전'을 강하게 제기했다. 수권 정당의 방향은 표(票)와 관련된 이해세력과 정보를 공유하거나 껴안을 수밖에 없는 것이며,이것이 민주주의 정치 구조다. 정당의 목적이 '정권 쟁취'라서 오죽하면 '역전 노숙자도 한 표요,대학교수도 한 표'라는 등 득표 대상에는 신분의 차이가 없으며, 꼭 포퓰리즘을 가동한다. 그러나 국가지도자 직(職)에 올랐을 때는 포퓰리즘 궤도에서 과감히 수정할 용기(勇氣)도 필요하다. 그리고 국가 발전을 위해서는 비판도 감수해야 한다. 우리는 국가 지도자의 한순간 오기(傲氣)와 오판(誤判)으로 인해 국가 예산이 수십조 원을 허비한 사례를 경험했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이명박 정부 4대강 사업을 비롯 그리고 울진 등 지방공항 조성에서 예산만 낭비한 사례는 부지기수다. 더욱이 통치권자의 결정은 그의 권위를 세울 수 있는 기회도 되지만 실패할 경우 엄청난 후폭풍도 따른다. 그래서 대통령은 공약을 언제라도 번복할 수 있는 유연성과 용단(勇斷)이 있어야 하며,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탈(脫 ) 원전(原電)'과 관련해 새 정부의 입장은 '시민배심원단'이 참여, 최대 3개월간의 공론화(公論化)를 거친 후 결정하겠다고 했다. 이 결정으로 원전사업자인 한수원은 물론 관련업체들은 공황상태다. 가뜩이나 경기불황인데, 원전사업현장마저 '불황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리면서 일용직 근로자들이 생계유지를 위해 뜨거운 태양 아래 일거리를 찾아 거리로 나섰다. 이도 그렇지만 현재 진행 중인 해외 원전수출현장까지도 타격받을 우려마저 있다. '탈 원전 공론화'와 관련 '독일 25년', '스위스 33년'이 걸렸고, 특히 스위스의 경우 '국민투표'만 5차례 부쳤다. 그럼에도 우리는 국가 에너지 수급정책과 대외신인도가 걸린 중차대한 원전사업 결정을 '시민배심원단'에 맡긴다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원전산업은 대한민국 산업화를 일으킨 '일등공신'이다. 더욱이 '원전 빈국'에서 '원전수출국가'로 위상이 우뚝 솟으면서 그 실력이나 능력은 세계가 인정한다. 종사자만 해도 수십만 명이나 되는 국가 기간산업이자 대한민국 대표 산업으로 성장한 원전산업을 공약 이행차원에서 단칼에 신규원전 건설 중단을 발표한 것은 신중하지 못한 결정일 수 있다. 지난 1976년 미국 39대 대통령 선거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지미 카터는 에너지 파동과,경제문제,특히 '주한미군철수(駐韓美軍撤收)' 등의 공약으로 현직 대통령인 포드를 물리치고 당선됐다. 노벨 평화상까지 받은 카터의 이력 중에 특이한 것은 해군에 입대해 '원자력잠수함' 계발계획에 참여한 사실이다. 특히, 그는 핵심 공약이었던 주한미군철수(駐韓美軍撤收)를 고집했다. 하지만 국방성,국무성 등 자신이 임명한 행정부 인사들과 CIA,의회 지도자들의 강력한 반대와 한국의 반발 및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각국의 우려에 부닥쳐 결국 취임 2년 만에 철군연기(撤軍延期)로 정책을 바꾸었다고 당시 국무장관 사이런스 밴스가 회고록 '힘겨운 선택'에서 밝힌 바 있다. 카터가 주한미군을 철수하겠다한 것은 월남전 패전 등에 따른 반전(反戰) 여론이 조성됐기 때문이다. 이 정책에 동조한 이는 백악관 안보담당보좌관 브레진스키뿐이었고, 행정부 내 대부분은 반대를 했다. 만일 카터가 주한미군을 철수했다면 국방력이나 경제력이 미약한 당시 박정희 정부에 큰 혼란과 위기를 초래했을 수 도 있었다. 카터의 공약 철회(撤回)로 당시 대한민국의 안보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청와대 참모나 에너지 관련 부처는 대통령에게 탈 원전은 시기상조(時機尙早)라는 진언과 함께 대통령의 출구전략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