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僞善)은 다른 동물들에게는 찾아 볼 수 없는 인간만이 가진 특질이다. 사람은 아마도 옷으로 치부(恥部)를 가리면서부터 자연스럽게 위선을 생활화해온 것이 아닐까 한다. 수치심 즉, 부끄러움을 느끼는 감정이 그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한 행동양식으로 나타난 것이 위선이며, 따라서 사람은 누구나 본질적인 위선자라고 볼 수 있다는 얘기다. 한 때는 '걸어 다니는 도덕 교과서'라고도 불리며 많은 젊은이들의 추앙과 선망의 대상이었던 한 IT기업인 출신 정치인이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정치적 도의적 위기에 처했다. 어떤 선거이든 간에 선거 기간 중 네가티브 캠페인이 기승을 부려온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네가티브'란 상대방이 가진 약점을 찾아 공격하는 행태를 일컬음이지, 의도적으로 상황을 아예 기획하고 날조하여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행위를 지칭하는 말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진부한 네가티브 캠페인이 아니라 매우 사악하고 중대한 범죄행위에 해당한다. 우리는 과거에도 이런 저런 사건, 공정선거를 해치는 부정한 행위들을 흔히 보아왔지만, 승자의 위세(威勢)에 눌려 진실이 은폐된 것이 많았을 것이다. 그리고 일부 어용 나발들은 그것이 온당치 못한 행위였을지라도 당락을 결정할만한 정도의 사항은 아니라는 둥, 해괴한 논리로 왜곡하고 얼버무려왔다. 그런데 만일 한 학생이 대학 입학시험이나 공무원 채용시험장에서 컨닝행위가 적발되었다면 어떻게 처결해야 옳은 것인가? 불과 한 두 문제 정도의 컨닝으로 보이기 때문에 당락에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라 하여 시험을 계속 보게 할 것인지? 아니면 즉시 퇴장 조치해야 할 것인지? 이번 대선에서의 허위사실 조작사건 역시 만일 그 조작의 혜택으로 그가 대권 취득에 성공하였더라면, 아마 모르긴 몰라도 또 그대로 덮여졌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혹 들어났더라도 그 정도로 당락에 큰 영향을 준 것은 아니라는 논리가 재현되었을 가능성이 배제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우리의 기억 속에 묻혀버린 그 많은 의혹들, 과연 우리가 진실로 여겼던 지난 모든 것들이 다 진실이었을까? 혹 우리가 알고 있는 과거의 위대한 지도자는 진정으로 추앙받을 만한 인물이었을까? 아직도 끝나지 않은 왕조의 추억, 엄청난 사욕을 애국이라는 화려한 의상으로 가린 채 국민을 기만해온 그들의 위선. 그 옛날 큰 가뭄이 들면 임금님이 친히 기우제(祈雨祭)를 지내는 일이 많았는데, 큰 가뭄 뒤에 큰 비가 내리는 현상은 자연계의 순환현상임에도 순진한 백성들은 임금님의 덕을 높이 칭송한다. 아니 칭송하게 만들었다. 그들의 공과(功過)를 따져보는 것도 좋지만, 나는 그들이 진정으로 나라를 사랑하고 국민을 사랑했던 위인들로 보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부모는 자식이 미운 짓을 해도 자식을 모함하지 않으며 자식을 함부로 버리는 법이 없다. 때문에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을 진실한 사랑으로 얘기한다. 그런데 그들이 정적(政敵)을 모함하고, 국민을 탄압해온 행태를 보면, 그들의 애민 애국이란 단순히 치부를 가리기 위한 옷과 같은 위선일지언정 그들의 진실성을 인정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사람은 위선적인 존재이다. 그러나 위선이라는 감정이 사람을 또 사람답게 한다는 역설이 성립된다. 왜냐하면, 사람이 가진 위선은 사람의 추악한 본능을 스스로 억제하게 하는 순기능도 가지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수치심이라는 것이며, 따라서 수치심도 모르는 사람을 일컬어 우리는 '후안무치'한 자라 욕한다. 대단한 인격자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후안무치(厚顔無恥)한 사람을 리더로 선출하는 그런 일은 다시 없어야 할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이번 사건을, 한 개인의 일탈로 보기 전에 정치권 전체에 자성(自省)의 계기가 되기를 바람은 물론, 우리 모두가 좀 위선의 옷을 벗고 좀 더 진실에 접근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어느 누구도 본인이 위선자임을 부정하지 말라. 그러나 이성(理性)이 본능을 제어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나마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