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고 씨의 아버지는 초등학교 밖에 나오지 못했지만 지혜롭고 의지가 강한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아들의 이름을 학고(學高)라고 지어놓고 갓난아기에게 말했다. 학고야, 나는 네가 물질을 초탈하는 인간이 되길 바란다. 그러려면 학문에 정진해라. 그는 갖은 고생을 하면서 철학의 나라 독일에 아들을 유학 보냈다. 학고 씨는 아버지가 특별해 보였다. 아버지의 소망대로 청춘 시대에 연애 한번 하지 않고 지천명의 나이가 되도록 책과 씨름한 학고 씨. 그가 지금 고통에 빠져있다. 수많은 책을 읽었지만 앞으로 읽을 책은 모래알처럼 많았다. 게다가 책 속의 내용은 금방 안개가 사라지듯 기억 속에서 소멸되었다. 이런 현상은 겨우 나이 오십에 홀가분한 독신 총각으로서는 건망증이 빨리 온 편이었다. 그는 뇌에 과부하가 걸린 것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다.  어느 날 '역설의 철학'이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하고 뒤풀이에 참석했다. 전국에서 몰려온 철학도와 논리 싸움에 말려들면서 학고 씨는 자신의 학문이 아직 멀었다는 열패감에 빠지게 되었다. 그것은 건망증이 한 몫을 차지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기운을 잃고 우두커니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책 한 권을 집어 들고 말했다. '문학적 건망증'을 쓴 작가가 파트리크 쥐시킨트였지? 옳지, 기억났어. 그 주인공의 건망증이 나보다 심각했어. 그래도 그는 노인이었지 않나. 학고 씨는 다시 실망에 빠졌다. 그는 머리를 쥐어뜯고, 손톱을 물어뜯고, 급기야 줄담배를 피우다가 어지러이 펴놓은 책을 뒤적거렸다. 몇 번이나 가르쳐줘도 금방 잊어버리던 고등학교 친구들이 생각났다.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왜 저렇게 기억을 못 하지? 하는 안타까움이 나중에는 왜 저렇게 무지하지? 하며 그들을 얕잡아봤다. 그 생각이 떠오르자 짧은 지식으로 머리를 쳐든 자신이 치졸했다. 목청 높여 주장하고서는 승리감에 젖었던 학술 토론회가 떠오르자 얼굴이 달아오르며 수치감에 빠졌다.  사람은 자기 검열에 빠지면 상실감과 존재의 해체 감에 빠진다. 이런 식으로 자신을 생각하는 것은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보다 나쁘다. 이 문장은 어느 책에서 본 거지? 아, 알랭 드 보통! 더듬다 보면 기억이 되살아날지 몰라. 파스칼도 자기검열에 빠져서, 자아도취가 결여된 나는 가증스럽다고 했다지 않아. 그렇게 생각하니 기운을 조금 얻었다. 철학자와 현자들의 이름이 하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몽테뉴! 책장에서 수상록을 찾아 밑줄을 그어놓은 문장을 읽었다. 산더미 같은 학문과 지식을 저장해둬도 그 속에서 견고하고 위대한 것이라곤 발견하지 못하고 모든 것이 헛됨을 알고야 자만심을 버리고 인간 조건의 허무함을 인정한다. 고대 그리스의 현자 훼레키데스는 죽으면서 자신의 저작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여기에서 나 자신을 만족시킨 것은 아무것도 없소. 그러므로 나는 권리를 안다든가, 진리에 도달했다고 말할 수 없소. 나는 사물을 발견한 게 아니라 열어본 것뿐이오. 몽테뉴의 결론은 이렇다. 가장 현명한 인간은 누가 무엇을 아느냐고 물으면 자기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고 대답한 자였다. 우리가 안다는 것은 바로 우리가 모르는 것의 극히 적은 일부분이라는 것이다. 학고 씨는 위로가 됐다. 갑자기 시골에 계시는 아버지가 그리워져 황급히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가방 안에는 몽테뉴의 수상록이 들어 있었다.  그는 열차를 타고 가며 가뭄에 시들어가는 나무를 바라봤다. 잎사귀 끝이 노랗게 타들어 간다. 인간의 지혜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도 한 줌의 비를 내리게 할 수는 없었다. 문득 지혜의 왕 솔로몬의 말이 입가에 맴돌았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내 아들아 경계를 받아라. 여러 책을 짓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케 하느니라. 학고 씨는 아버지에게 말하고 싶었다.  그러니까 아버지, 당신의 초탈은 이런 거지요. 결국 허무한 인생의 마지막 희망은 신에게 돌아가는 것이지요. 대문호들도 그랬으니까요. 열차의 꽁무니가 강의 상류 쪽으로 휘돌아갈 때 빗방울이 듣기 시작했다. 비를 많이 내려달라고 기도하는 학고 씨의 얼굴이 촉촉이 젖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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