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누구나 '자기의 모습'인 용모를 가지고 출생한다. 모습은 사람의 생긴 모양을 말하고, 용모는 얼굴의 모습이다.  인간의 육신은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기에 자신의 생김새에 대해서 언급한다는 것은 바로 부모와 관련이 있어서 불만스런 것이 있어도 말하기가 미안하다.  그러나 사람의 본성에는 성질과 됨됨이를 나타내는 성품이 있고, 모양새를 나타내는 내모와 외모가 있다. 일찍이 성인들의 말씀가운데도 인간의 인품을 평가할 때 겉모양과 속모양을 매우 중요하게 평가한다. 성서에도 "외모가 훌륭하다고 사람을 칭찬하지 말고, 외모가 볼품없다고 경멸하지 말라"고 했고, 옷차림과 웃는 모습, 그리고 걸음걸이는 품격이나 품위의 잣대라 했다.  사람의 몸뚱이라 불리는 육체는 몸체와 사지로 형성되지만 얼굴에 입, 코, 눈이 있어 용모의 초점이 되고 있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도 "용모가 수려한 사람은 어떠한 추천서에 못지않게 효능이 있는 법"이라 했으며, 면접시험에 가장 포인트가 되는 곳도 얼굴 생김새다.  인간의 속모습인 내모는 외모와 달리 쉽게 나타나 보이질 않는다. 그러나 태도나 몸가짐에는 말씨와 마찬가지로 특징이 있어 거짓을 감추기에 많은 교감을 필요로 한다. 프랑스의 시인 파스칼은 "너그럽고 상냥한 태도, 그리고 사랑을 지닌 마음-사람의 외모를 아름답게 하는 이 힘은 말할 수 없이 큰 것"이라 했다. 불교 화엄경에 "외면은 보살을 닮았고, 내심(內心)은 야차(귀신)와 같다"는 말이 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과거와는 달리 학벌, 출생지, 스팩(경력)은 따지지 않고 오로지 블라인더(실력)에 의해서 공채에 주안점을 둔다니 면접 시에 많은 의아심이 사라질 것 같다. 가슴으로 읽는 시에 동화작가 손동연의 '소와 염소'라는 동시가 있다. 소가/ 아기 염소에게 그랬대요/ "쬐그만 게/ 건방지게 수염은?/ 또 그 뿔은 뭐람?"/ 그러자/ 아기 염소가 뭐랬게요?/ "쳇, 아저씨 부끄럽지도 않아요?/ 그 덩치에 아직도 '엄마 엄마' 하게…" 동물 우화 시이다.  소는 어른인 자기에게도 없는 수염과 뿔을 가진 아기 염소가 눈에 거슬려 "쬐그만 게/ 건방지다"고 트집을 잡고 흉을 보면서, "또 그 뿔은 뭐람?" 나무란다.  염소도 '아기'이지만 덩치가 몇 배나 큰 소 '아저씨'에게 맞선다. 웃음 깔린 다툼이다. 동심의 눈은 다툼에도 웃음을 담아낸다. 염소는 '아기'여도 수염이 달린 게 본래 모습이고, 소가 '아저씨'여도 울음소리를 '음매음매(엄마엄마)' 내는 건 당연한 일이다. 천진난만한 어린이 눈에 비친 유머러스한 염소와 소의 모습에 웃음이 터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웃고만 있기 어렵다. 타고난 겉모습이 놀림감이 될 수 없음은 물론 오히려 개성으로 존중받아야 옳다는 시인의 의도를 읽게 되면 갑자기 서늘해지며 깊은 성찰에 잠기게 된다는 박두순 동시작가의 해설이다.  정가(政家)에서는 고관들을 상대로 해서 청문회가 열리고 있다. 좋은 학벌에, 화려한 경력을 쌓은 정객들에게 인물과 걸맞지 않은 부정과 비리로 뉴스판이 요동치고 있다. 생물학적으로 소나 염소는 같은 소과(科)에 속하면서 서로 흠집만 찾아낸다. 알맞은 인재를 알맞은 자리에 쓴다는 고사성어 적재적소(適材適所)란 말이 그렇게도 어려운가. 외모로 사람을 선택하기란 정말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 속담에 '곧은 나무도 뿌리는 구부러진 것이 있다' 는 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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