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이 터진 날이었습니다 B29 비행기 한 대가 조용한 하늘을 으르렁거 리며 다녀갔습니다 뒤이어 제트기 한 대는 귀 청을 흔들어놓고 달아났습니다 겁먹은 식구 들은 전쟁이다아 소리치며 곡괭이와 삽자루 를 챙겼습니다 폭탄이 떨어지면 다 죽는다고 반공호를 파겠다며 소란을 피울 때였습니다 나는 아버지를 우러르며 소리쳤습니다 "아버 지 밥이나 먹고 죽자"고. -서정춘 '어린 눈에 각인 된, 잃어버린 유년'
시인의 어린 시절 겪은, 6· 25 전쟁의 참화가 60여년이 지난 오늘도 눈에 선하게 닥아 오는 시다. 전쟁은 참혹하다. 서정춘 시인은 응축된 짧은 서정시로 유명한 시인이다. 시인의 눈은 어떤 성능 좋은 사진기보다 날카로운 시각으로 사물을 꿰뚫는다. 북한의 남침으로 6·25가 터진 날의 전쟁터 묘사가 어떤 전쟁 시보다 현장감 있게 닥아 오는 시다. 제트기가 귀청을 흔들어 놓고, B29 비행기가 조용한 하늘을 짐승처럼, 우뢰처럼 으르렁 거리며 달아나는 그 날의 서울 바닥, 한강 다리가 폭파되고, 그 아비규환의 서울 바닥 한 복판에서 그래도 폭탄이 떨어지면 죽는다고 '반공호'를 팠던 시절, 전쟁의 와중에도 곡괭이와 삽자루를 챙기는 식구들, 그때 아홉 살 짜리 어린놈이 뭘 안다고, 아버지를 향해 내뱉는 한마디 말, "아버지 밥이나 먹고 죽자!" 고. "밥이나 먹고…"얼마나 애절하고 비통한 한마디 인가. 이 시의 묘미는 "밥이나 먹고 죽자"는 진술이 주는 긴장과 반전이다. 삶은 아직도 날마다 전쟁터다. 잃어버린 유년이 안타깝고 어린 날의 동화 치고는 암울한 동화다. 그렇다, 이런 6·25를 겪고 그 참화 속에서도 기성세대 사람들은 살아서, 끝끝내 살아서 오늘의 위대한 대한민국을 이루어 냈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내면 풍경은 황량하고 쓸쓸하다. 이런 현대인의 내면처럼 전쟁 묘사 시는 황량하고 쓸쓸하다. 아마도 지금 이 땅의 젊은이들은 상상하기도 힘들고 그날의 비극을 잘 모르리라. 이 땅을 할퀴고 간 60여 년 전의 그 참혹했던 동족 전쟁의 현실을. 기성세대 사람들은 6·25를 체험 했다. 지금도 이 땅의 전쟁의 비극, 그 후유증은 진행 중이다. 불안한 휴전의 땅, 한국이다. 인간사에서 벌어지는 비극, 이 땅의 보이지 않는 전쟁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우리는 이런 안타까운 우리의 현실을 어떻게 벗어 날 수 있을까? 아무도 쉽게 답 할 수 없는 참으로 어렵고 난감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전쟁으로 인한 잃어버린 유년 시절 그 안타까운 세월도 다 지나갔다. 그러나 삶은 누가 뭐라해도 희망 속에서 다시 시작된다. 타오르는 싱그러운 아침햇살처럼. 북망산천이 아무리 가깝다 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