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도들이 한국의 대문호(大文豪)를 손꼽는다면 먼저 김동리(이하 동리) 선생을 지목하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국내 문학계에서는 '동리'를 독일에서 국민적 사랑을 받고 있는 '괴테'와 버금간다고 자랑을 한다. 하지만 일반인들에게는 동리의 생애와 문학사적 위치, 국내 문학계에 미친 영향 그리고 그의 출생지에 대해 아는 이는 별로 없다는 것이다.특히 그가 일제 강점기 때 글로써 독립에 대한 갈망과 민족의 혼(魂)을 울부짖는 등 문학계 독립투사(獨立鬪士)였다는 사실이다. 또 그는 국내 근대 문학사의 중심에 있었다. 그래서 아직도 그리고 영원히 대한민국 문단에서 추앙받는 순수문학의 거목이자 민족주의자인 것이다.그럼에도 우리는 동리를 '잊혀진 위대한 문학가' 정도로 여겨 유감이다. 경주시 성건동 중앙시장에서 북쪽 골목으로 200여m 에 나지막한 한옥이 있다. 이 곳을 경주시는 '동리의 생가(生家)'다며 조그마한 간판을 세워두고 있다. 대문호의 생가라고 표시한 안내판을 보고 있노라면 경주시 문화정책 수준을 아예 '3류'라고 홍보하고 있는 듯 한 인상마저 주고 있다. 그러나 이 곳은 동리의 생가가 아니다. 그가 태어난 곳은 여기서 동북쪽으로 200여m 떨어진 곳이다. 동리가 위대한 이유는 그의 문학적 업적도 중요하지만 그의 초기 작품은 경주(慶州)를 소재하면서 일제 강점기 시절에 대한 사회· 종교 ·문화 등을 글로써 표현했다는 것이다.더욱이 그는 한국 최고의 지성이자 위대한 사상가인 범부(凡父) 김정설의 막내 동생이다. 그는 범부의 영향으로 그 작품 속에는 신라 때부터 전승되어 온 민족 신화의 특색을 강하게 표현했다. 단편소설 무녀도(巫女圖.1939)와 '황토기(黃土記)'다. 또한 8·15 해방 이후 한국 문학계가 좌·우익으로 이분될 때 그는 우익 즉 보수(保守)의 핵심이었다. 6·25 동란 후 1955년, 한국 전쟁과 관련된 현실적인 색채가 깃들인 소설 '흥남철수'를 집필한 이가 동리다. 이태동 서강대 명예교수는 "동리가 같은 시대의 다른 작가들과 구별되는 점은 일제강점기와 전쟁 때 겪은 '가난' 또는 '고통'을 소재로 사용하되 이를 사회 또는 제도의 탓으로 돌리거나 미래를 위해 운명을 개척해야 한다는 식으로 전망하지 않다는 점이다"고 평가한 바 있다. 또,"동리가 민족적이고 토속적인 색채가 짙은 소재를 찾아 작품을 쓰게 된 것은 당시 일제(日帝)의 질곡(桎梏) 속에서 얼어붙은 민족의 혼(魂)을 일깨우기 위함이었다"고 했다. 국내 문학계가 비교했듯이 괴테는 독일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는 '대문호'다. 특히 독일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의 출생지는 '프랑크푸르트'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파우스트' 등 불후(不朽)의 명작(名作)이 그의 작품이다. 프랑크푸르트 시는 괴테를 이 '도시의 아들'이라고 칭하며 그와 관련된 것을 '관광상품화'시켰다. 시측은 그가 태어나고 작품 활동을 한 곳을 복원하여 '괴테 하우스(Goethe House)'라 명명했고, 인근 광장을 '괴테광장'으로 조성하는 등 독일 관광의 필수코스이기도 하다. 이곳은 '연중무휴'여서 연일 관광객들의 발길로 북적이고 있다. 그런데 괴테와 버금가는 '동리'를 우리 스스로가 민망할 정도로 뒷곁에 두고 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정부나 지자체, 그리고 문학계는 알고 있는 지 묻고 싶다.경주시의 문화예산은 2천억 대다. 한류 열풍에 동참한답시고 신세대 중심의 공연과 이와 유사한 문화행사에 연간 수백억을 펑펑 쓰고 있다. 시민사회는 이 모두 전시성 행사라며 혹평을 하고 있다. 프랑크푸르트의 문화관광 중심은 괴테이며, 관광경기가 불황을 타지 않는 것도 '괴테 역할'이다. 프랑크푸르트가 괴테를 스토리텔링하면서 도시의 격(格)을 높였듯이 경주시도 그 반 수준이라도 따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