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들은 일생의 과업 중에서 부모의 유택을 마련하는 것을 우선시 하였다. 명문가에서는 문중 산이 있어서 친상을 당했을 때에 별 어려움이 없이 선령 하에 모실 수 있었으나, 곤궁한 가정에서는 화장을 하거나 혹은 타인 소유의 산, 국유산림 등에 몰래 산소를 드렸다. 그래서 국유산림에는 수많은 무덤이 마치 오늘날 공원묘원을 방불케 할 정도로 공동영면단지를 이루었다. 이와 같은 매장상례도 시대의 변천에 따라 차츰 부모유택 마련은 승용차를 싸거나 주택마련 등에 그 순위가 빼앗기고, 삼년상은 이미 도강한지 오래 되고 말았다. 그래서 삼년상이 아니라 삼일상으로 종상 처리화 되고 있으니, 삼년상은 옛날의 치상사로 사전에 남을 뿐이다. 선인들은 가정형편이야 어떠하던 낳아 길러준 어버이에 대한 보본으로 삼년의 상기를 지키며 애곡하였던 것은 그 의례가 무엇보다 존엄한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삼년상은 부모의 상을 당해 3년 동안 상복을 입고 유교식으로 치상하는 일을 가리킨다. 그것은 자신이 태어나기 전 부모의 품안에 3년 동안 있는 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삼년상은 부모상에 지내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신하가 임금의 상에, 아내가 남편의 상에, 아버지가 장자의 상에, 양자가 양부의 상에, 시집가지 않은 딸이 아버지의 상에, 제자가 스승의 상에 모두 삼년상을 지냈다. 다만, 스승의 경우는 심상3년이라고 해서, 정신적인 측면에서의 3년 상을 말하고 있다. '논어' 양화(陽貨)에는, 재아가 스승인 공자에게 삼년상에 대해 물었다. "삼년상의 기간이 너무 깁니다. 군자가 3년 동안 예를 행하지 아니하면 예가 반드시 무너지고, 3년 동안 음악을 연주하지 않으면 음악도 반드시 황폐화될 것입니다. 묵은 곡식이 동나고, 햇곡식이 이미 익었으며, 불붙이는 나무는 한 차례 바꾸어 사용하였으니 일 년에 상을 끝 낼만 합니다." 재아는 3년이라는 상기간은 길어서 그동안 오직 부모만 애도하고 그 밖의 일에 등한시 한다면 일상생활은 비생산적이 되어서 공한기 된다고 생각되어 물었던 것이다. 공자께서는 그 불편한 것을 짐작하고, "쌀밥을 먹으며, 비단 옷을 입는 것이 네 마음에 편하겠느냐?. 음식을 먹어도 달지 않고, 음악을 들어도 즐겁지 않으며, 거처함에 편안하지 않기 때문에 하지 않는 것이다. 이제 네가 편하다면 그렇게 하거라" 하고 말씀 하니, 재아는 동의하지 않는 듯 나가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본 공자는 "재여는 인하지 않구나. 자식은 태어난 지 3년 된 뒤라야 부모의 품에서 벗어난다. 삼년상은 천하의 공통적인 상례다. 재여도 자기부모로부터 3년 동안 사랑을 받지 않았던가." 삼년상을 모시는 근본적인 이유는 자식이 태어나 혼자 먹고 활동할 수 없는 젖먹이 기간과 그 후 부모의 지극한 보살핌 속에 자라야 하는 2년, 부모가 품 안에서 길러 준 은혜에 대한 보답이며, 보은지의(報恩之義)를 다하는 것이다. 공자께서는 "아버지가 살아계실 동안엔 그 뜻을 살피고,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그 행적을 살핀다. 3년 동안 아버지가 하던 바를 바꾸지 말아야 효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子曰 父在觀其志 父沒觀其行 三年無改於父之道 可謂孝矣)"라고, 3년 동안 아버지를 모델링하면서 아버지의 뜻과 행동을 견지하기를 바랐으며, 또한 효제를 개인의 단순한 품성이 아니라 사회가 유지되는 정치적·경제적 토대의 으뜸가는 기초질서로 보았던 것이다. 효제가 무너지면 사회질서와 국체가 위협받기 때문이다. 부모에 대한 삼년상은 단순이 여막을 짓고 거기서 3년 동안 시묘하는 것에 한하는 것이 아니며, 어버이, 어버이의 삶에 마음을 두는 일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공자의 삼년상 말씀은 국체를 굳건히 하고 어버이의 삶에 마음을 두는 것이라고 하니 그 뜻을 현세인도 마땅히 새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