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조직 생활을 하면서 심신뿐만 아니라 명예에도 '손상'이 가는 일이 발생할 수가 있다. 수십 년의 세월을 살다보면 개인적으로 알게 모르게 크고 작은 위법을 저지를 수 있지만, 조직 생활에 있어서도 소관 업무와 관련하여 고의는 아니더라도 각종 과실을 범할 수가 있다. 더러는 본인이 직접 통제하기 어려운 관리감독 의 책임 등을 져야할 때도 있다. 이에 따라 징계 처분을 받거나 인사상의 불이익을 받기도 한다. 조직인이면 어쩌다 이러한 잠재적 위험에 처해질 수가 있으며, 그 위험 관리가 제대로 잘 되지 못했을 경우에는 여러 형태의 인적·물적 사고로 이어져 상당한 벌칙을 받을 수 있다. 더러는 치명상을 입고 조직에서 퇴출되는 일도 있다. 만약 퇴출을 당하는 경우에 그 것이 진정 억울하거나 가혹한 수준에 이른 것이라면 당연히 항변을 해야 하고 필요시에는 쟁송절차까지를 추진해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수준이 아니라면 결연히 손을 털고 새 출발을 하는 것이 현명하다. 세상에 직업의 '절대가치'는 차별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죽음도 그 절대가치의 차이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조직에서 퇴출되는 지경까지는 아니지만 징계나 좌천 등 대·소의 '손상'을 입은 경우에는 어떻게 잘 치유를 할 것인가? 힘든 상황을 딛고 조직생활에서 재기하여 결국 성공적으로 조직생활을 마무리한 선배·동료들의 내력을 살펴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응관(應觀)·망각(忘却)·보임(保任)이다. 첫째 '응관'이다. 손상을 입은 뒤 취해야 할 정공법적인 자세는 그 손상의 현장에서 도피하지 않는 것이다. 전략적 후퇴는 있을 수 있으되 마땅히 그 사건의 전말(顚末)을 '관'(觀)하여야 한다. 이는 단순히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의 본질적 과정을 관조하고 적극적으로 껴안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주었거나 관련된 사람들과도 마치 어떤 사안(事案)을 총괄 평가하듯이 가능한 한 조속히 정리하고 결산을 해야 한다. 이 결산에는 본인의 성찰과 향후의 행동방침을 소명하는 것 등이 포함된다. 이 때 조직 밖의 힘을 동원해서 정리하려는 시도는 행위의 정당성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못하다. 예컨대, 소속 부서에서 근무태만으로 징계나 경고를 받았거나 좌천을 당했다고 하자. 그 원인이 실질적인 근무태만일 수도 있고 부서 운영체계의 오인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어떻든 소정의 절차가 종료된 마당에는 불평이나 변명 등을 하는 것은 구차해진다. 수용 태도를 분명히 하고 향후의 소신을 밝히는 것이다. 감성적인 부분까지 포함하여 그간의 오해를 청산해야 한다. 여기서 상급 조직이나 외부의 도움으로 '잘 챙겨주라'는 식의 정리는 좋지 않다는 것이다. 오직 스스로 관계자들과 매듭지어야 한다. 재기에 성공한 선배들은 이렇게 하였다. 둘째, '망각'이다. 징계나 인사 절차가 종결된 다음에 반성하여 정리되고 매듭지어진 후에는 잊어버려야 한다. 상처 부위를 자꾸만 되새기고 있으면 나아가지 못한다. 조직 내 어떤 위치에서 일하든 그 사건은 잊어버려야 본연의 현재 직무에 몰입할 수가 있다. 잊기 위해서라도 지금의 업무에 전념하고 눈앞의 인간관계에 집중해야 한다. 재기에 성공한 선배들은 모두 이처럼 하였다. 셋째, '보임'이다. 상처의 추억을 내면화 내지 체화(體化)하는 것이다. 그 손상을 망각하되 완전히 지워버리지는 않으며, 자신의 손상을 시련으로 여기고 스스로 단련의 계기로 삼아 안으로 재 흡수하여 내공을 쌓고 승화시키고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본인 경력관리의 미래 동력으로 재활용하는 것이다. '고통 없이는 얻는 것도 없다'(no pain, no gain)고 하지 않았던가! 재기에 성공한 선배들도 이렇게 하였음에 틀림없다. 이러한 일련의 정리·재활용 과정을 관통하는 원리는 '자주'(自主)이다. 수처작주(隨處作主)이다. 근본적으로 오로지 스스로 대처하고 매듭짓는 것이며 그리고 해결책도 바로 그 현장에서 찾아내는 것이다. 본시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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