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얼마 못 산다 내 병 내가 안다 내일은 린스 좀 가져 오렴 부스스 까치집 짓고 거기 갈 순 없잖아 먼저 간 니 아버지 낮술로 불콰해져 멋쩍게 기다리고 있을지 몰라 환자복은 싫어 하늘하늘 명주 옷 한 벌 입혀서 보내줘 친정 고샅 길 걷듯 훠이훠이 가볍게 갈게 꽃누비 버선은 꼭 신겨라 발 시리면 돌아오고 싶을지 몰라 너무 조바심 내진 말어 이젠 붙잡아도 가야돼 머리 허연 저 철부지 맡아줄 니가 있어 다행이야 밥 꼭 챙겨 먹여 어머니 쉼 없이 뱉어낸 말들이 내 안에서 피었다 지네 마른 꽃 진 자리에 어머니 새록새록 다시 피어나네 - 엄하경 '그리운 어머님의 유언'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딸의 애절함이 간절하게 담긴 시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시, 지금은 저 세상에 가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사모곡이다. 세상에서 가장 그립고 가장 아름다운 말이 뭘까? 그것은 '어머니'라는 말이다. 지금 어머님이 살아계신 사람들은 행복하다. 어머님의 목소리를 날마다 들을 수 있고 어머님의 따뜻한 손을 직접 만질 수도 있으니까, 그것은 살아 있음의 큰 행복이 아닌가. 그러나 이런 평범한 진실도 어머님이 살아 계실 땐 잘 모른다. 어머님이 천년만년 내 곁에 머물 줄만 안다. 어머님이 돌아가신 뒤라야 비로소 늦은 깨달음에서 자신이 불효자였음을 탄식한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이렇게 어리석고 항상 깨달음은 한발 늦게 찾아온다. 시인은 어머니가 생전에 하신 말씀들을 떠 올려 본다. " 나 얼마 못 산다/내 병 내가 안다/… 환자복은 싫어/하늘하늘 명주 옷 한 벌 입혀서 보내줘/친정 고샅 길 걷듯 훠이훠이 가볍게 갈게/ 꽃누비 버선은 꼭 신겨라/발 시리면 돌아오고 싶을지 몰라" 어머니가 평소 쉼 없이 뱉어 낸 말들, 그 거짓 없는 아픈 말들이 이 시의 중심을 이룬다. 수의를 환자복으로 하지 말라. 마지막 가는 길, 명주옷으로 해달라는 부탁이다. 어머니의 마지막 유언이 애절하다. "이젠 붙잡아도 가야 돼/ 밥 꼭 챙겨 먹여"달라, 발 시리면 돌아오고 싶을지도 모르니까 '꽃누비 버선'도 꼭 신겨 달라는 유언이다. 마른 꽃 진 자리(어머님이 떠나신 후)에 비로소 어머님의 말씀이 아프게 가슴을 친다는 시다. "내 안에서 피었다 지네/새록새록 다시 피어나네" 일상의 평범한 말속에 시가 숨어 있다. 내 삶에서 소중한 가치는 무엇인가. 살아가면서 저승에 계신 어머니가 간절하게 그리워진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들지 말라. 미워하는 사람도 만들지 말라, 사랑하는 사람은 못 만나 괴롭고, 미워하는 사람은 만나서 괴롭다" 법구경의 말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