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찌민에서 만나는 휴일. 무척 이른 아침인데 사이공 강이 보이는 창가에 햇살이 든다. 여기 시간으론 새벽 5시. 한국은 7시. 늦잠을 청하려 해도 시차와 이른 햇살이 몸을 그냥 두지 않는다. 대화 할 사람도 없고, TV를 보고 있으려니 한심하기도 해서 한참을 고민하다 '베트남 알기'에 나서기로 했다. 한 나라를 이해하기 위해 가장 먼저 그들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는 생각도 한 몫을 했다. 발길을 옮긴 곳은 베트남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진 '베트남 역사박물관'이었다.  매일 아침 출근하는 사무소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역사박물관은 한 눈에도 고풍스러운 건물의 모습으로 나의 마음을 당긴다. 총 18개의 전시실과 수상쇼 공연장 등으로 이루어진 이곳은 베트남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축소판'이다. 그리 크지 않은 공간이지만, 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특징적인 역사와 문물을 전시해 놓고 있다. 더욱이 이곳은 주변 국가인 중국과 앙코르왓트 문명의 캄보디아(크메르), 인도 등의 국가와 교류를 통한 문화의 문명의 변천사를 볼 수 있다.  솔직히 말하면 너무 큰 박물관은 지루하다. 수많은 유물들을 보다 보면 이내 지친다. 유물과 역사가 비슷한 일본 등 동양의 박물관은 더욱 그렇다. 다행이라고 할 것은 아니지만 베트남 박물관은 적당한 유물과 적당한 시간에 볼 수 있는 크기가 마음에 든다. 지루함은 적고, 대신 기억도 남는다. 특히 전시관을 돌면서 만나는 크메르 문명과의 교류는 인상적이다. 시바 신 모습의 석상은 물론 그 어느 곳에서도 보기 힘든 메콩강 근처에서 발견된 나무 석가모니 상(像)과 시바신의 상(像) 앞에서는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베트남의 역사는 우리의 역사와 참 많이 닮았다. 지정학적인 영향 탓으로 이들도 수많은 외세의 침략으로 굴곡진 시간을 보냈다. 기원전 2천 년 전 반랑국의 흥왕을 건국의 아버지로 역사에 등장한 베트남은 독자적인 토착문화를 이루며 긴 역사의 여정을 이어 온다. 그 시간들은 베트남인들에게 흥망성쇠의 시간이었다. 1000년 이상을 중국의 지배를 받는 아픔을 겪었다. 그렇지만 한국처럼 베트남 또한 끊임없는 항전으로 나라를 지키고 새로운 왕조를 탄생시키며 고유한 역사와 문화를 지켜냈다. 중국이 지배한 안남 시대의 압제를 뚫고 최초 독립 왕조를 세운 응오 왕조부터, 딩, 레 왕조, 리 왕조를 거쳐 동아시아의 강국 쩐 왕조와 리 왕조에 이러선 200여 년 이상 부국강병을 누렸다. 이 과정에서 1127년과 1226년 신라와 고려에 정착한 정선 이씨, 화산 이씨의 시조 이양흔, 이용상 등은 리 왕조의 왕손이다. 이들은 지금도 한국과 베트남 교류에 일역을 담당하고 있다.  박물관을 돌면서 이제는 일반적인 말이 된 '역사는 가정이 없다'는 말이 떠오른다. 국력이 쇠하면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그 고통은 고스란히 백성에게 돌아간다. 위정자들의 책임이 무거운 이유다. 근대에 와서도 베트남은 힘의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프랑스의 지배를 거쳐 중국과의 전쟁 그리고 1967년 일명 통킹만 사건으로 미군이 본격 개입하면서 시작 된 7여 년의 '베트남 전쟁'을 겪는다. 전쟁으로 인한 피해는 막심했다. 수많은 기성세대가 전화 속에 죽음을 맞았다. 전체 인구의 70% 가까이가 30대 이하인 인구 구조를 가지고 있는 이유다, 북 베트남의 점령을 피해 바다로 도망을 가다 수장된 수많은 보트 피플도 전쟁의 후유증에 하나다, 보이지 않는 남북지역 간의 갈등과 상흔은 여전히 베트남인들의 가슴 속에 남아 있다.  그러나 베트남은 변하고 있다. 침략과 고통을 받았던 민족이 아니라 세계에 당당한 국가로 항해를 하고 있다. 한국처럼 근면함과 끈기를 바탕으로 새로운 도약을 시도하며 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모두가 합심하고 있다. '역사의 아이러니' 라고 해야 하나, 전쟁으로 만들어진 평균 연령 30세의 젊은 인구가 베트남의 경제성장의 원동력을 만들고 있다.  박물관을 나서니 시간의 흐름은 빠르다. 벌써 오후 4시다. 바로 옆 놀이 공원엔 놀이 기구에 빠진 아이들의 함성이 요란하다. 이 나라의 주역이 될 아이들의 함성이다. 몇 년 후 저들이 새로운 베트남을 만들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의 손을 잡고 나오는 아이들을 얼굴을 다시 한 번 바라보았다. 희망 가득한 얼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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