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곡'을 써서 중세 암흑기를 털어내 버린 이탈리아의 문호 단테는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작가다. 그는 아홉 살 때 베아트리체를 만났다. 단테는 5월제 기념행사 때 포르티나리 집안을 방문했다가 베아트리체를 만났다. 그는 베아트리체를 마음속의 유일한 연인으로 품고 성장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결혼에 성공하지 못했다. 베아트리체는 단테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고 한 은행가와 결혼했지만 단테는 그런 그녀를 잊지 못하고 끊임없이 그리워한다. 따지고 보면 단테의 사랑은 짝사랑이었을 수 있다. 우연한 만남이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유럽에서는 두 사람의 연애는 '궁정식 연애'라고 한다.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비밀스럽고 보답을 바라지 않는 찬양과 존경을 바치는 것이었다. 베아트리체가 결혼 후 요절하자 단테는 문학 속에서 위안을 찾았다. 피렌체를 관통하는 아르노강변에서 마주쳤던 기억을 더듬으며 '새로운 삶'이라는 소네트를 썼다. 단테는 아르노강의 베키오 다리를 건너와 거닐다가 멀리서 다가오는 베아트리체를 바라보며 숨이 멈추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말을 걸지 못했다. 지나치는 그녀를 우두커니 바라보며 감춰진 연정에 괴로워했다. 그 때의 경험을 형상화 한 '새로운 삶'은 이탈리아 문학에서 사랑이라는 테마가 본격적으로 활용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 후 단테는 자신의 대표작 '신곡'에 베아트리체를 등장시켰다. '신곡'은 단테가 라틴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를 받아 지옥과 연옥을 여행하고, 그 후 베아트리체의 안내로 천국을 여행하는 내용을 담았다. 그는 베아트리체를 "내 마음의 영광스러운 여주인"이라 묘사했다. 단테와 베아트리체의 사랑은 단테의 문학으로 승화했고 세계 문화사적으로 피렌체의 아르노강과 베키오 다리는 세계 여행자들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됐다. 사람들은 아르노 강변을 거닐며 단테와 베아트리체의 애달픈 해후를 떠올리며 베키오 다리 위에 걸터앉아 노을을 즐기거나 멀리 미켈란젤로 언덕을 바라본다. 경주의 남천에는 지금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설화가 담긴 월정교가 복원되고 있다. '원효대사는 월정교를 건너 요석궁에 들어갔다'고 전하는 월정교는 통일신라의 다리다. 원효대사는 평소에 '누가 자루 빠진 도끼를 주리오? 내가 하늘을 떠받칠 기둥을 만들겠노라(誰許沒柯斧 我斫支天柱)'라는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무열왕은 그 노래의 의미를 파악하고는 요석공주에게 원효대사를 찾도록 명령한다. 원효대사가 경주 남산으로부터 내려와 월정교를 지나다가 자신을 찾고 있는 신하를 보고는 다리에서 떨어져 옷을 입은 채로 물에 빠졌다. 신하는 월정교 바로 옆의 요석궁으로 원효대사를 인도해 옷을 말리게 했고 원효대사는 자연스럽게 그곳에서 머물게 됐다. 원효대사와 요석공주 사이에 난 아들은 설총이다. 경주의 남천은 그림같이 아름다운 강이다. 월성의 남쪽을 감싸 안고 흐르는 이 강은 문천(汶川)이라고도 불렀으며 고운 모래가 거꾸로 흘러 토함산으로 거슬러 올랐다고도 전한다.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지만 오래 전에는 여름철에 어린 아이들이 멱을 감던 추억의 강이기도 했다. 이 강은 신라의 설화와 역사를 안고 있는 강이고 그곳에 있는 다양한 다리의 흔적들도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월정교, 일정교, 효불효교 등 잘만 가꾸면 훌륭한 이야기 자원들이다. 단테와 베아트리체의 사랑 이야기를 소재로 하면서 관광자원으로 꾸민 피렌체의 예를 부러워 할 필요는 없다. 피렌체는 르네상스의 발상지며 단테는 물론 미켈란젤로 등의 예술가들이 활동했던 도시므로 경주와 비교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경주도 고대 신라의 이야기를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는 일이다. 특히 남천과 월정교를 원효와 요석공주의 사랑 이야기를 매개로 발전시킬 필요는 있다. 월정교의 복원이 거의 마무리 돼 간다. 경주시는 월정교의 복원이 완료되면 단순히 통일신라시대의 건축물로서의 가치만 부여할 것이 아니라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이야기를 극대화해 제댜로 된 자원으로 활용해야 한다. 사랑 이야기는 언제 누가 해도 달콤하고 아름답다. 이야기의 힘은 갈수록 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