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무더워서 더욱 그런 건지, 세상 돌아가는 모습이 자꾸만 짜증스럽다. 안 보고 안 들으려 해도 그렇게 되지 않는다.  아침 일찍 일어나면 신문을 읽고, 텔레비전을 켜서 뉴스를 본다. 두 시간 반 정도는 그렇게 보내는 것이 하루의 시작이며, 그런 일상이 버릇으로 굳어져 버린 것 같다.  이틀에 한 번은 새벽 다섯 시 반이면 대중목욕탕에 가는 버릇도 굳어졌다. 이런 날은 세 가지 조간신문을 가지고 가서 한 시간 정도는 주요 내용만이라도 훑어보고, 집으로 돌아와서 아침 식사를 한 뒤 다시 읽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찝찝해서 견딜 수 없다.  한 지기는 그런 나를 '신문 중독자'라며, '요즘 신문, 읽을 게 있느냐'는 투로 핀잔을 한다. 언론 불신증이 심한 그의 이 말은 언론사에서 34년간이나 일한 필자를 고운 시선으로 보지 않을 뿐 아니라 비아냥거림이라는 걸 왜 모르랴.  그렇다고 그 지기의 그런 시각을 나무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모습이나 보도들을 보고 듣노라면 민망스러울 때가 적지 않다. 여론에 끌려 다니거나 뭔가 눈치를 보는 것 같고, 포퓰리즘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균형감각을 제대로 유지하지 못한다는 느낌도 없지 않다.  하지만 그 지기뿐 아니라 '우리(대중)'가 '민중'이 아니라 '우중'이라는 말이 자꾸만 뇌리를 스친다. 많은 사람들이 진정으로 깨어 있기보다는 '어떤 힘'에 끌러 다니는 어리석음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 같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 때 주위의 그런 적잖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바라보면서 진솔하게 썼던 시 한 편을 옮겨본다.  "어지럽고 두렵다/오늘 사람들은 어제 그 사람들이 아니다/내가 잘못된 건지, 그 사람들이 그런지,/어제는 지나갔을 뿐/오늘은 달라져야만 하는지,//자주 마음 바꾸고/얼굴 바꾸는 사람들을 밉보면 안 될까/그 사람들을 원망하면 내 잘못일까/생각하면 괴로울 따름,/나도 마음 바꿔야만 할까//망연자실 주저앉아/남 탓으로만 들끓는 세상을 바라본다/문득 떠오르는 광우병 촛불행렬,/요즘 행렬은 그와 다른 건지/광장과 거리는 알고 있으련만,//어지럽고 두렵다/오늘 사람들이 내일 또 어떻게 바뀔지/난로의 주전자 물이 펄펄 끓는다/자꾸만 끓어 넘친다/넘치지는 말아야 할 텐데,//지금의 함성은 빌라도광장의/그 옛날 함성과는 빛깔이 전혀 다를까/끓는 물이 왜 자꾸만 거슬리는지,/들끓는 저 광장과 거리를/저어하는 마음 무겁기 그지없다"(시 '함성' 전문)  촛불행렬이 민심이라고 예찬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당시 왜 자꾸만 광우병 촛불행렬과 그 옛날 빌라도광장의 함성이 떠오르고, 마음이 그토록이나 무거웠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지금도 여전히 당시 생각과 별반 다르지 않은 건 '왜'일까.  세상은 여전히 그렇게 돌아가고, 현재진행형으로 속도와 강도마저 더해지는 것 같기 때문이라면 내가 잘못됐다고 그 지기는 또 핀잔을 할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우리'(국민)부터 정신을 차려야겠다는 마음을 고쳐먹고 싶지 않다. 우리 모두가 냉철하고 냉정하게 우리 자신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생각도 바꾸지 않고 싶다. 우리 모두가 제정신을 찾는다면 세상이 바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의 끈을 붙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마음을 역시 진솔하게 담은 시 한 편을 더 옮겨본다.  "불을 지피면 금방 달구어졌다가/이내 식어 버리는 양은냄비//누군가 요즘 사람들 마음도 그렇다고 한다/뜨거워졌다가 금세 식고 마는 냄비 속/섞어찌개 같다고도 한다//누가 불을 지폈다가 껐다가하는 건지/세상이 오락가락 요동쳐서/갈팡질팡, 중심을 잡지 못하는 사람들/어제의 적이 오늘은 동지/오늘의 동지는 내일 또 어떻게 바뀔지/누가 불을 지폈다가 끄면/식어 버리고 다시 뜨거워졌다가 식는//우리는 냄빈지, 섞어찌갠지/먹은 마음을 그대로 가져가기는커녕/그런 사람들을 되레 바보 만들지 않았는지//누군가가 제 탓 먼저 하라고/죽비를 내리쳐도 먹혀들기나 할는지"(시 '냄비 타령'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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