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도를 웃도는 폭염의 기세가 유리창을 녹일 듯 맹렬했다. 그녀는 진열해놓은 구두가 탈색될까 봐 애가 탔다. 만져보니 가죽이 따끈따끈하고 말랑말랑해졌다. 블라인드를 칠 입장도 아니었다. 사람들이 쇼윈도를 들여다보고는 들어오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장사가 되지 않는데 대형 백화점이 들어선 후로 손님의 발길이 뜸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건물주는 가게를 비우라 했다. 얼마 전 새로 인테리어를 했는데 권리금이 날아가게 되어 손해가 막심하다. 어쩌다보니 빚이 불어나 앞으로 살길이 막막했다. 그녀만 그런 게 아니다. 상가 사람들은 모두 불경기를 타고 있었다.  정오의 태양이 뜨겁게 내리쬐고 하늘에는 구름한 점 없었다. 문밖으로 나가면 훅 끼치는 열기에 숨이 막힐 듯했다. 답답한 마음에 자주 가게 밖을 나갔다가 텅 빈 거리를 보고는 한숨을 쉬고 들어갔다. 적군이 한바탕 쓸고 간 전쟁터 마을처럼 한낮의 상가는 폭염에 숨을 죽이고 있었다. 아들은 이 무더위를 어떻게 견디고 있을까. 군에 다녀온 아들이 계약직으로 일하러 갔다가 석 달 만에 허리를 다쳐 돌아왔다. 그래도 그 몸으로 알바를 뛰겠다고 집을 나갔다.  그녀의 목으로 한 줄기 땀이 흘러내렸다. 수십 년 만의 폭염이라지만 그녀는 에어컨을 자제했다. 선풍기 바람은 맥을 못 추고 끼릭끼릭 신음을 내질렀다. 가겟세도 나오지 않는 데 없는 손님을 기다려 에어컨을 계속 틀려니 전기세가 아까웠다. 우유만 한 잔 마시고 나와 배가 고팠지만, 자장면이라도 시키려면 오천 원이 후딱 달아날 것이라 참았다. 불볕더위보다 참을 수 없는 것은 심연에서 끓어오르는 생에 대한 분노였다. 더위를 먹었는지 속이 메슥거렸다. 계산대 테이블로 돌아와 눈을 감았다. 하나님. 왜 저를 부자로 만들지 않으셨나요? 하고 따지는데 쇼윈도에 누군가 이마를 대고 안을 살폈다.  그녀는 문을 열고 내다봤다. 살짝 건드리면 부스러질 듯 몸이 마른 할머니가 골목 쪽으로 달아났다. 할머니가 끄는 유모차에는 폐지가 실려 있었다. 며칠 전에 기진해서 길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것을 남편이 요구르트를 네 병이나 먹였다던 그 할머니였다. 그녀는 정수리를 내리쬐는 해를 가리키며 말했다. 할머니, 이런 날은 열사병 걸려 쓰러져요, 오늘은 그만 들어가세요. 할머니는 손을 휘저으며 폐지를 더 주워야 한다고 웅얼거렸다.  고생만 하다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난 그녀는 가게로 들어가 지갑을 들고 나왔다. 만 원을 꺼내 내밀며 할머니, 오늘 이걸로 폐지값 하시고, 어서 집에 들어가세요, 하자 할머니가 손사래 쳤다. 그래도 그녀는 호주머니에 돈을 넣어주고 가게로 돌아왔다.  오후에 가게를 남편에게 맡긴 그녀는 전도지를 돌리러 시외버스정류장으로 나갔다. 청년들이 우르르 내리는데 모두가 배낭을 멘 것으로 봐 여행을 온 듯했다. 저들은 여행을 다니는데 아들은 알바를 구했는지, 못 구했는지, 돈 한 푼 없이 나간 아들 생각에 목이 메었다. 그녀는 전도지를 들고 청년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아까 그 할머니가 한 청년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할머니의 등 뒤에 서서 귀를 기울였다.  나한테도 손자가 있어여. 걔를 나 혼자 힘으로 키웠어여, 그 애가 어쩌다 지갑을 잃어버렸을 때, 누가 도와줬대여. 어서 받아여. 이거, 사실은 내 돈 아니여. 하나님 돈이여.  할머니는 그녀처럼 청년의 남방 주머니에 접은 지폐를 넣어주었다. 청년이 고맙다고 몇 번이나 허리를 굽히고 매표소로 걸어갔다. 청년도 할머니처럼 여위었고 아들처럼 지쳐 보였다. 그녀는 할머니가 미안해할까 봐 얼른 돌아섰다. 구석진 자리로 걸어가는 동안 그녀는 마음속으로 아들의 이름을 자꾸 불렀다.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그녀는 핸드폰을 움켜쥔 채 얼굴을 감싸고 한동안 그런 자세로 있었다. 할머니가 청년에게 돈을 건네주는 모습이 떠올랐다. 마치 자기 아들에게 돈을 주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중얼거렸다. 귀를 막아 가난한 자의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면 자기가 부르짖을 때도 들을 자가 없느니라. (잠언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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