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10년이 좀 지난 2007년 4월 미국 수도 워싱턴(D.C.)에 인접한 버지니아(Virginia) 주에서 희대의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모두 33명이 죽고 수 십 명이 부상당한 사건이었다. 미국사회는 전쟁보다 참혹한 911테러의 홍역을 치르면서 전반적으로 불안하고 삭막해져 있던 터에 그 사건에 다시 경악하고 순간의 민심도 전역에 걸쳐 흉흉해졌다. '선진'(先進)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는 선진국, 선진화 등으로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사용해 오고 있는 말이다. 이에 관해 국민 총생산(GDP)이나 총소득(GNI) 등과 같은 경제적·양적 요소에 한정하지 않고 문화적·질적 의미를 포함하는 개념이라는 점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선진사회는 어떤 상태를 말하는가? 어떤 수준이 되어야 선진 시민문화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기준은 있는 것인가? 아마도 보편적·일률적 기준이나 측도를 제시하기는 쉽지가 않을 것이고 제시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개념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개별 분야와 사안에 따라 그리고 상대적으로 논의될 수가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한 예로 영국의 경우에 주(州)의 수도 즉 주도(state capital)가 되기 위해서는 그 도시에 대성당(cathedral)이 있어야 하고 명문대학교(prestigious university)가 있어야 한다고 한다. 한국의 경우는 인구수가 일차적 기준이 되어 왔다. 질적인 차원의 영국과 양적인 차원의 한국의 기준 중 어느 것이 선진적이라고 할 것인가? 또 다른 예로 공중화장실은 그 청결상태와 편의시설 측면에서 더 깨끗하고 완비된 것이 선진적이라고 보는 데는 별 논란이 없을 것이다. 또 길거리에 침을 뱉지 않는 것이 선진적이라고 하는 데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점에서 우리 한국사회는 아직 후진국 수준을 졸업하지는 못했다고 봐야할 것이다. 그러면 거리에 휴지를 버리는 것은 어떠한가? 휴지를 마구 버리는 사회는 후진적이라 해야 하나? 폭발물 위험이나 안전 등을 위해 거리 휴지통 설치를 금지했기 때문이라면 어떻게 봐야할까? 다시 돌아와 2007년 4월의 그 총기난사 사건은 명문 버지니아 공대(Virginia Tech)에서 일어났다. 한국 국적의 그 학교 4학년 학생 한 명이 계획하고 저지른 참극이었다. 학교 기숙사에서 출발해 강의실로 가면서 두 명을 사살하고 수업 중인 강의실에 와서는 앞 뒤 문을 잠근 후 교수 학생 가리지 않고 무차별 난사를 했다. 그리고 최후로 자살해버린 사건이었다. 여기서 그 사건의 동기나 수습과정 등에 대해서는 접어두자. 기억하기도 끔찍한 그 사건 당시 한국과 미국 그리고 한국인과 미국인이 보여준 태도는 달랐다. 그 당시 필자는 워싱턴 대사관에 재직 중이었다. 사건의 직접 관할인 대사관뿐만 아니라 미국 내 전 공관이 비상근무 체제가 되었다. 우리의 영사들은 사건 현지에 급파되고 대사 이하 전 공관원이 수습에 임했다. 그 중 우선적으로 취한 것 중 하나가 교민의 신상안전에 관한 조치였다. 공관 직원의 가족을 포함하여 전 교민들에게 언행에 주의를 하고 특히 보복성 테러 등에 각별히 조심하라는 취지의 공문을 교민사회에도 보냈다. 공포 분위기에다가 한국사람, 한국 공직자라는 것이 미안하기도 하고 미국 일각에서는 분노의 눈으로 우리를 보고 있는 듯해서 어디에다 말도 못할 지경이었다. 그러던 중 사건 이틀 정도 지났을 때 평소 서로 연락하며 우호적인 협력조직(counterpart)이던 버지니아 주 정부의 국무장관 비서실장으로부터 이 메일이 왔다. 요지는 이러하였다. "사건 수습에 힘들다. 우리도 이렇게 어려운데 당신네들은 얼마나 더 힘이 들겠느냐. 무엇이든 도와주겠다. 같이 극복해 나가자" 순간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건이 터지자 우리는 가족과 교민들만 우선 생각했다. 보복을 걱정했다. 그리고 움츠려 말도 제대로 못하고 있었다. 미국은 언론도 차분히 사실관계(facts)만 보도했다. 우리가 우려했던 한국인에 대한 미국 일반인이나 학생들의 보복 같은 일은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필자의 경우는 오히려 거리와 공원에서 위로의 말을 두 번 정도 들은 바 있다. 선진문화는 문화 주체인 시민들이 보다 넓은 사고(思考)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소득수준이 높은 것, 공중화장실이 깨끗한 것, 거리에 침 뱉지 않는 것도 좋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상대방 입장을 생각'하는 문화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