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은 짐승의 원 가죽(皮)을 아주 다른 형태(革)로 바꾸는 것(新)처럼 낡거나 효용성이 떨어진 것을 완전히 새롭게 바꾸는 것이다. 여기서 그 출발은 바꿔야 할 '필요성'이다. 무엇이 문제인지 그래서 어떻게 바꿔야 할 것인지에 대한 검토가 선행되어야 한다. 잘 되고 있는 것은 고치지 말아야 한다. 유명한 '지네의 우화'가 있다. 발이 70개인 지네가 평소에 자유자재로 잘 돌아다녔으나 누군가로부터 어떻게 그렇게 발을 잘 다루는 지에 관한 질문을 받고 나서는 발이 꼬여 제대로 걷지 못하더라는 이야기이다. 효용성이 여전히 좋은데도 고치려 한다면 이는 '혁신을 위한 혁신'일 뿐이다. 혁신은 철저히 '문제점에 대한 진단'이 우선인 것이다. 우리 사회의 인문분야 특히 정부 조직이나 인사 분야에 있어 혁신의 이름으로 작금에 시도되어 왔던 변화들을 보면 잦은 '축소'와 '확대', '개방'과 '보호', '분리'와 '융합', '과거 회귀' 등으로 '혁신을 위한 혁신', '개혁을 위한 개혁'이 많아 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물론 그 처방에 잘못인 경우도 있었겠지만 대부분 문제점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나 필요성에 대한 점검 없이 일부에서 들리거나 보이는 사례를 전체적인 현상으로 잘못 판단하는 이른바 '일반화의 오류'(generalization error)를 범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공공분야 성과급 제도의 열풍은 다분히 1980년대 이후 세계적인 신 공공관리이론(NPM:New Public Management)의 바람에 기인한 것이다. 한국의 경우도 지난 몇 년간 공공기관 성과급 문제로 몸살을 앓다가 2017년 5월에 새 정부 들어 원칙적으로 과거로의 회귀 방침이 취해졌다. 공공기관의 생산성이 낮다는 것은 막스 베버 이래의 관료제의 가설일 수가 있다. 효율성이 실로 낮은지 여부에 대한 진단을 잘 했어야 했고 또 그렇다면 그 원인이 무엇인지부터 먼저 정확히 밝혔어야 했다. 성과를 평가하는 기법의 한계도 있을 수 있다. 그러한 평가나 고찰도 없이 들리는 소리나 바람에 따라 제도를 바꾸는 것은 이 또한 포퓰리즘(populism)인 것이다. 병을 치료하기 전에 진단부터 해야 하는 것은 상식이다. 의사는 환자가 찾아와 어디가 아프다고 하는 소리만 듣고 치료하지 않는다. 물론 문진(問診)도 필요하겠지만 예전에는 청진기를 들이대었고 오늘날은 필요에 따라 정밀진단을 먼저 한 후에 치료를 하는 법이다. 병든 부위가 어디며 무슨 병인지 또 원인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등을 먼저 밝힌 후에 그에 맞는 치료를 하는 것이다. 조직이나 인사의 혁신도 이와 같아야 한다. 조직을 바꾸려면 현재 조직에 병든 부분이 어디인지, 효율성이 떨어져 성과가 미흡한 원인이 무엇인지, 조직에서 제 기능을 못하고 거의 사조직이 된 곳이 어디인지, 새로운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부분이 어디인지 등을 먼저 진단해야 한다. 근년에는 한국 정부에 더러 감성이 개입된 조직개편도 솔직히 있었다. 공적인 업무에 있어 감정이 개입되지 않아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아무리 사회적으로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에 대처하는 조직개편에 있어 일시적인 감성이나 분노 등이 개입되어서는 결코 아니 된다. 이는 의사가 감정적인 진단이나 치료를 하지 아니해야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2017년 한국 새 정부에서, 그동안 시대가 바뀌었거나 정권이 바뀌었다고 조직을 바꾸는 즉 조직개편을 위한 조직개편의 관행이 지양된 것은 이성적(理性的)으로 진일보한 것이다. 문제점 진단 없이 혁신을 한다는 것은 눈 감고 발차기 하는 것이나 표적지 안보고 사격하는 것과 같다. 또한 사격을 잘 하려면 정조준만 잘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그에 앞 서 조준선 정렬이라는 것을 먼저 잘 해야 하는 것과 같다. 이와 마찬가지로 문제에 대한 정확한 진단은 혁신에 있어서 언제나 필수이다. 그런데 이 진단도 명의가 병을 진단하듯이 제대로 해야 한다. 의욕만 앞세워 온갖 검진을 다 한다고 처방이 잘되는 것도 아니다. 고수가 하듯이 하되 환자가 받아들일 수 있게 쉽게 접근·처치해야 하는 것이다. 20세기 말 정부 조직진단을 대대적으로 한 적이 있다. 체계적으로 문제 진단부터 해보자는 취지에서 상당히 근원적으로 접근했으나 경영관리적 시각에 치중하는 바람에 수십억이 든 그 작업이 그 후 별로 쓸모없이 되어 버렸다. 성공한 기업가 출신이 국무총리가 되어 실패한 총리가 되는 것을 눈앞에서 목도한 바 있다. 그 누가 말했든가, 국가는 회사가 아니다(P.R.Krugman, A Country is Not a Compan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