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남에 대해서는 잘 알고 평가하지만 정녕 자기 자신의 신분에 대해서는 전혀 파악이 안 되고 무시해 버린다.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뿐이고, 나를 가장 모르는 사람도 나인데 가장 비겁한 것은 자신도 인정하지 않고 남을 간섭하는 모순도 있다.  그래서 일찍이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했지만 진정 수수께끼와 같고 요지경과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 철학자 안병욱 교수는 요즘 세대를 가리켜, "성실한 언어와 사랑의 노래, 그리고 만남의 기쁨도 사라져 가고 있다"고 한탄하였다.  우리의 생활과 인생길에서 새로운 질서와 올바른 좌표를 제시할 위정자는 없는가. 세상을 다 준다 해도 내가 없으면 무의미하고 허사다. 그러면서도 '나'라는 존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며 내 인생의 행복은 어디서 찾고, 나는 이 땅에서 무엇을 하고 무엇을 남겨야 하는가. 삶의 보람을 어떻게 찾으며 왜 착하고 의로운 사람이 불행해지고, 악하고 부정한 자가 부강한가. 인생의 모든 일이 우연인가, 필연인가.  내 생명의 불꽃은 한 번 뿐이며 죽음과 더불어 영원히 꺼지고 마는가, 아니면 저 피안의 세계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는가. 우리의 입에서는 아름다운 향기가 사라지고, 눈에는 맑은 정기가 꺼져가며 가슴에는 진실한 기도가 없어지고, 우리의 생활에는 성실한 대화가 들리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도피주의자가 되고 또 어떤 사람은 향락주의자로 자기를 마취시키며 살고, 또한 어떤 사람은 이방인처럼 정처 없이 살다 가는가. '나'라고 하는 말의 원뜻은 말하는 사람이 이름 대신에 자기 스스로를 가리키는 제1인칭 단수대명사다. '나'라는 존재는 내가 신뢰할 수 있는 유일의 벗이요, 내 삶의 잔고를 아는 저금통장이다.  몽테뉴의 '수상록'에 "남을 위해 사는 일은 이제 그만하고, 얼마 안 남았지만 조금 남은 여생은 나 스스로를 위해서 살라"고 했다. 성서에도 "사실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무엇이나 된 것처럼 생각한다면 그것은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각자는 자기가 한 일을 생각해 보자. 착한 일이 있다면 그것은 자기 혼자서 자랑스럽게 생각할 일이지, 남에게까지 자랑할 일은 못 된다. 각 사람은 자기의 짐은 자기가 져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행복 중 하나는 자기 자신에게 영혼을 바쳐 의지하고 자기 자신 속에 있는 모든 것을 소유한 자라 했다. 파스칼의 '팡세'에서도 "인간은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비록 진리를 발견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최소한 자기 생활을 지키는 데는 도움이 된다" 자기 자신을 알려고 하면 다른 사람의 행동을 관찰하라.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면 너 자신의 품행을 보라. 흔히들 모든 사람들은 자기는 그르게 행동하면서 남 보고는 옳게 행동하라고 요구한다는 뜻의 우리 속담에 "나는 바담풍(風) 해도, 너는 바람풍(風) 해라" 한다.  시인 하이네는 "내 온 몸은 바로 기쁨이요, 노래며, 때로는 칼이요, 불꽃이다" 했다. 자기에 대한 존경, 자기에 대한 지식, 자기에 대한 억제, 이것만이 인간의 생활에 절대적 힘이다. 나의 몸, 내가 하는 일을 소중하게 여겨라. 남들도 따라할 것이다. 눈이 아무리 밝아도 제 코는 안 보인다. 이것이 자기를 아는 것이다. 나의 상대는 나를 비추는 거울이요, 내 속을 아는 청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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