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에수님 안의 능력을 알았다면 "주님이시면 죽음을 이기겠구나" "주님의 능력이 슬픔을 이겨낼 수 있구나" "아 예수님 오셨구나. 예수님! 죽음이라는 놈이 와서 온통 집을 뒤 엎을려고 해요. 주님이 죽음을 내 쫓아주세요" 그들이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마리아와 마르다의 눈에 비췬 에수님은 평범한 사람의 모양을 가지고 그들 앞에 서 있었다. 사람들이 죽음 앞에 꼼짝 못하는걸 알고 예수님이 오셨지만 사람의 모양을 가지고 오셨기 때문에 그들도 예수님이 죽음 앞에 꼼짝 못할 줄 알고 있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 하지만 마리아와 마르다 눈에는 현재의예수님의 말씀이 맞지 않았다. "우리 오빠는 이미 죽어 썩어서 냄새가 나. 우리 오빠가 산다는 것은 불가능해. 하나님이라면 몰라도 우리 오빠는 죽었어" 마리아와 마르다는 예수님에 대한 서운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왜 섭섭한 마음을 가졌는가? 오빠 죽기 전에 와서 살려 줬으면 좋을건데 빨리 오라고 해도 오지 아니하고 "왜 이제 왔습니까?" 온통 그 생각 뿐이다. 그래도 마르다는 이성적인 사람이어서 예수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나가서 맞이했다. 마리아는 마르다 보다 정적인 사람 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에 대한 서운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예수님이 오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예수님을 맞지도 않고 그냥 방안에 앉아 있었다. "예수님 지금오면 뭐 하십니까? 살아있을 때 와서 살려달라고 그랬더니 죽고 난 다음에 왜 왔어요? 사람을 보냈는데 빨리 좀 오시지, 저희를 사랑하신다고 해놓고서!" 마리아 마음에 예수님에 대한 섭섭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나가서 맞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지 않았다. 마르다가 마리아에게 "선생님이 너 찾는다"고 하니까 마리아가 간신히 나갔다. 그리고 예수님께 이야기 했다. "주께서 여기 계셨으면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겁니다" 섭섭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예수님을 하나의 사람으로 보았다. 예수님이 죽음을 이길만한 능력을 가진 분 임을 믿지 못했다. 그들은 지금까지의 예수님을 보아왔다. 그 예수님께서 병든 사람을 고치는 것을 보았고, 문둥병자를 고치는 것을 보았다. 귀신들린 자,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것을 보았다. 거기까지는 믿을 수 있었다. 마리아와 마르다의 생각 속에서는 그 이상의 한계를 더 날아서 예수님의 한계로 도달을 못하기 때문에 주님께서 죽은 오빠를 살릴 것을 믿지 못했다. 예수님은 섭섭하게 생각하셨다. "네 오빠가 다시 산다" 그들의 믿지 않음을 안타까워 하셨다.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 우리가 그렇지 않은가? 하나님은 "천지와 만물을 다 이루니라"고 말씀 하셨다. 우리가 볼 때 과연 이루어 질까? 하지만 이루셨지 않은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형편을 많이 본다. '정말 될 일이야? 정말 이루어질 수 있을까? 이건 안 될 꺼야' 자기의 생각 속에 젖어서, 다시 말하면 우리 생각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 예수님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힘이 있다. 아무리 깊은 죄 속에 빠져도 예수님은 능히 여러분을 그 속에서 건질 수 있다. 땅에 있는 혼돈을 내 쫓고 공허와 흑암을 쫓으신 주님이 여러분 속에 있는 절망이나 슬픔이나 고통을 능히 쫓아 내실 수 있는 분이시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 마리아와 마르다처럼, 여러분 생각에 가능한 것만 예수님이 하신다고 믿지 않길 바란다. 여러분 보시기에 어떠하든지 간에 예수님에겐 능치 못하심이 없다. 그 예수님을 믿으실 바란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