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에게 강한 직업윤리가 요구되는 까닭은 직업의 특수성 때문이다. 어떤 전문직이든 지키고 실천해야 할 직업윤리가 있게 마련이다.
성직자는 그가 지켜야 할 신앙에 대한 고도의 규범과 사명이 있고 의사직은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실행하겠다고 다짐한다.
언론인에 있어 직업윤리란 공공의 이익에 충실하고 정의를 위해 어떤 상황에도 타협하지 않는 용기와 절제를 필요로 하는 행동체계와 가치다.
언론인은 사회에 중대한 영향을 주는 직업상 특성 때문에 책임의식이 강해야 하며 개인의 감정이나 자신의 이익 그리고 편견을 개입시켜서는 안되며 사건내용의 인물이나 제보자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해서는 안된다.
언론자율화는 윤리문제의 또 다른 하나는 오보와 허위보도다.
신문의 난립과 증면경쟁 그리고 무책임한 보도와 오보로 인한 피해는 늘고 있는데 시정과 반론권 기회는 지극히 인색한 편이기 때문에 문제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언론의 취재보도 구조는 문제가 있다고 본다. 취재방식이 주로 기자단과 기자실이란 조직과 공간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언론의 자유경쟁시대에 걸맞지 않게 기자들이 스스로 취재 영역과 행동반경을 묶어 주는 것이 모순인 것이다.
우리 저널리즘이 위기를 맞고 있다. 언론이란 이름에 편승하며 이성을 잃는가 하면 편성의 자유라는 명문을 내세워 바깥의 비난과 질책을 외면하고 있다. 비대한 권력은 독단, 독선, 독주로 흐르는 쉬운 법이다.
분명 이 사회는 언론이 가장 영향력이 있고 가장 강력한 사회 세력이기 때문 아닐까. 지금 우리 언론인은 거기에 걸맞는 존경과 신뢰를 받고 있는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훌륭한 기자가 되기 위해서는 부단한 공부를 해야한다.
지금은 전문화시대이기 때문에 전문화시대에 아마추어는 발붙이기가 어려운 것이다.
다시 말해서 풍부한 현장경험, 고도의 전문지식, 탁월한 문장능력이 기자의 필수조건이라면 투철한 기자정신, 건전한 철학, 철저한 직업의식 등 정신적 요인은 기자의 충분조건인 것이다.
적진 앞에 포진해 있는 군영의 병사들이 안심하고 쉴 수 있는 것은 소수의 불침범 때문이다.
기자는 바로 24시간 이 사회를 지키는 불침범인 것이다.
기자들이 밤을 세워 현장을 뛰고 수신기를 지키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고 편히 쉬면서도 언제나 세계의 모든 뉴스를 제때에 듣고 싣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기자는 분명히 사회조직의 최고 지식이자 엘리트다.
이것을 위해 우리는 항상 자기와의 싸움, 시간과의 싸움에서 이겨 훌륭한 기자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