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남북한 공동행사에 ‘민족끼리’라는 구호가 나부꼈다. 그건 남한측도 북한측도 사용한 문구였다. 남북한이 잘 해보자는 이야기지만 남북한은 각기 다른 나라와 상호방위조약 체제에 편입되어 있다. '민족끼리'라는 구호는 애초부터 말 그대로 감상적인 구호였다.
지난 일이지만 금강산에서 북한군에 의한 우리나라의 한 여성 총격살해 사건은 '민족끼리'라는 구호의 허상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새벽 5시가 가까운 시간에 남한도 아닌 북한에서, 그것도 사전교육을 잘 받고, 세상 물정을 잘 아는 중년 부인이 산책에 나서, 저지 없이 관광 경계선을 1.2킬로미터나 벗어났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거기서부터 되돌아와 1킬로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총격으로 살해돼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것은 더 의아스럽다. 미스터리의 냄새가 짙게 풍겨온다.
이명박 정권 등장 이후 최근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입만 열면 햇볕정책을 계승해야 한다고 정치권에 강조하고 있다. 하기야 그것으로 노벨상을 탔으니 자신의 정치적 유산을 길이 계승시키려는 것은 당연하리라. 햇볕정책의 대의를 부정할 사람도 없다.
야권으로부터 6.15정신을 이어 받으라는 압박을 받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이 18대 국회개원 기념 시정연설에서 북측에 대화를 제의한 날에 공교롭게 총격 사망 사건은 발생했다. 청와대는 북한에 대한 대화 제의와 총격사건은 별개라면서 이를 연관시키는 것을 경계했다.
두 사안은 별개지만 북한이라는 주체는 둘이 될 수 없다. 때문에 국민들의 생각은 많이 다를 것이다. 남북관계는 평화가 아니라 휴전 상태임을 다시 실감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사건은 두고두고 큰 여파를 낳을 것이다.
외교관계를 가진 나라에서 교민이 총격에 살해된다 해도 우리는 그것을 그 온나라와 관련시키지는 않는다. 우리 교포가 버지니아 공대에서 수십 명을 죽인 총격사건이 발생했을 때에 우리 국민들, 특히 교민들은 미국 사회에 대하여 매우 미안해 하면서 어쩔 줄 몰라했다. 그러나 미국의 지성인들은 그것은 범인 개인의 문제이고 미국 사회의 문제라면서 한국인 집단이 미안해 할 필요가 없다고 밝힐 정도였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그러나 이번 북한군 초병의 남한 관광객 총격은 공권력에 의한 것이므로 사안이 다르다. 북한군 초병은 경계수칙에 따라 행동한 것일 수 있다. 문제는 바로 그것이다. 심지어 전시 중에도 군인 포로는 살해하지 않는다는 것이 제네바 협정 정신이다. 하물며 관광객으로 간 민간인은 말할 것도 없다. 북한군 초병은 관광지에서 미명(未明)에 걸어오는 남한 여성 관광객을 군인으로 오인했다고 해도 총격이 아니라 생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북측은 총격으로 살해한 극렬한 행동을 취하고도 재발방지를 우리측에게 요구하고 있다.
금강산에 주둔한 북한군은 금강산이 어떤 곳인지 너무나 잘 알 것이다. 외신이 전하는 대로 10년간 100만 명이 다녀간 곳이다. 북한이 남한 관광객 한 사람마다 수입금액을 100달러만 쳐도 북한경제 규모로 보면 천문학적인 액수다. 말하자면 금강산은 북한에게 달러박스이자 경제특구다. 그것도 입만 열면 강조하듯이 "‘민족’이 드나드는…." 북한측은 ‘사고’를 현대아산 측에게 통보했다. 국경 아닌 국경, 사선(死線)을 넘나드는 금강산관광의 남측 접촉 창구는 지금 민간기업이 맡는 차원에 있다.
6.15정신과 10.4 합의를 계승하라고 북한은 선전공세를 취해 왔다. 무고한 관광객 살해는 일부 세력의 돌출 행동일지 모르지만 "우리에게 북한은 무엇인가?" 다시 충격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햇볕정책의 성과라고 자랑하는 금강산 관광이 혹시 금강산 해수욕장에 널린 모래로 허무한 모래성을 쌓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전현직 정책 당국자들은 깊이 반성해야 한다. 걸핏하면 이만큼 남북관계가 안정된 것이 햇볕정책 덕분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정해진 폐쇄 회로를 따라 관광객들이 들락거린다고 북한이 공산 독재체제라는 무거운 겨울 외투를 벗는 것도, 벗을 생각이 아님도 남한의 정치인들은 알아야 한다. 그런 식으로는 북한의 개혁과 개방에 도움을 줄 수 없다.
남북 관계개선은 정치인들이 만나 얼싸안고 등 두드리는 정치적 제스처가 아니라 진정한 관계정립을 위한 세심한 기초공사가 먼저 필요했다. 관광객이 북한의 무자비한 총구에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와도 의논할 상대가 없는 남북이 그간 햇볕정책으로 무엇을 진전시켰는지 전현직 당국자들은 말해보라고 묻는 국민들이 적지 않으리라.
이래 가지고 민족 동질성을 언제 회복하고 언제 통일하나? '민족끼리'는 꿈같은 이야기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