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웃었다. 오늘(30일) 한국과 미국 간의 통화 스와프협정 체결을 알리는 브리핑 중간에도 웃고 브리핑을 마치고 기자실을 나서면서도 웃었다. 역시 사람은 웃는 얼굴이 찡그린 얼굴보다 보기 좋다. 그는 이달 초 워싱턴에서 열린 국제통화기금 총회에서 미국정부에 통화 스와프를 체결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호의적인 반응을 얻지 못했었다. 그래서 그는 그간 “되지 않을 일을 시도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는데, 그 비판 체증이 오늘은 산뜻하게 씻겨 내려갔을 것이다. 강 장관은 장관으로 일한 10개월 동안, 다른 각료와 달리 사진이 언론에 매일 실렸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한 표를 던진 사람들의 열망이 ‘경제 살리기’였으니 경제 각료는 뉴스의 인물이 될 소지가 있던 데다, 그는 말도 많고 행동도 컸고 실책도 했다. 그가 20년 전, 주 미국대사관에서 일할 때 체험적으로 갖게 되었다는 “환율은 주권이다” 라는 고집스런 신념에 따라 이 정부 출범 초기 국제환율시장에 개입하였다가 230억 불 가까운 외환보유고를 축내자, 그때부터 언론은 강 장관의 말과 행동을 더욱 더 좇으며 이런저런 표정의 그의 사진을 매일 실어왔다. 딱이 필요하지 않은 '쫑코성' 사진도 실었다. 하기는 강 장관이 스트레스를 안 받는다면 누가 스트레스를 받겠는가? 이틀 전인 28일 그가 국회 기획재정위 국회의원들 앞에서 한 말의 진실 여부는 의심되지 않는다. 그는 말했다. “장관 취임 후 하루도 쉬지 않고 조국에 대한 마지막 봉사로 생각하고 열심히 일해왔다. 온몸으로 파도에 부딪히면서 일해왔다. 일을 하는 과정에서 말도 많았다” 그런데 운 나쁘게도 세계경제는 이 정부 출범 초기부터 고유가, 고원자재 가격이었다. 악몽처럼 미국 발 금융위기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악몽이 어찌나 크고 무서운지 불과 7주 전에 불어온 미국 발 금융위기가 까마득히 오래된 듯 느껴진다. 강 장관은 억울하기도 할 것이다. 비난과 비판이 순식 간에 인터넷으로 퍼 날라지는 시대이다. 그래서 때문에라도 역대 경제 각료 중 가장 많은 비난에 노출되고 있다. 10여 년 전 IMF 외환위기를 앉아서 맞았던 강경식 경제부총리보다도 더 욕을 먹는다. 언론은 갑자기 10년 전 국민의 정부 시절의 경제 각료와 4년 전 대통령 탄핵안 정국 당시의 경제 각료를 하나씩 '끌어내' 강 장관과 비교하며 칭찬한다. 가까운 경제전문가 말을 따르면, 그의 결정적 실책은 외환보유고를 좀 축낸 것뿐인데 야당 국회의원들은 돼지고기 값 좀 모르는 걸 가지고도 펄펄 뛴다. “양극화는 어느 나라에나 있는 것 아닌가” 정도의 말을 하려고 했다가 “양극화는 시대의 트렌드”라고 좀 잘못 말한 것을 두고 그런 삐걱거리는 말들만 모아 네티즌들은 ‘강만수 어록’을 만들어 깔깔 야유하며 돌려 읽는다. 진보언론들은 ‘광수 생각’을 패러디 한 ‘만수 생각’을 만들어 “금융위기보다 강 장관이 무섭다”고 조롱한다. 그 자신은 일을 열심히 하다 보니 말도 좀 하게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언론들은 "행동보다 말부터 쏟아낸다"고 그를 질책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한미 간의 통화 스와프협정의 공을 강 장관에게 돌렸다. 강 장관에 대한 대통령의 신임이 당분간 계속될 징표이다. 그러나 그 반대의 강 장관 경질 주장이 그리 쉽게 꺼질 것 같지 않다. 선진당의 이회창 총재도, 민주당도 강 장관의 교체를 외치고 있다. 돌아보면 강 장관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은 한 두 군데서 나온 것이 아니다. 야당 정치인들, 전직 대통령을 빼더라도, 7월에는 경제∙ 경영학자 118명이 기자회견을 통해 경질을 주장했고 시민단체인 경실련은 10월 들어 성명서를 내거나 기자회견을 하며 적극적이고 주위의 장삼이사 평범한 사람들은 모이면 경제 걱정에 장관 흉 보기다. 강 장관은 개인으로서, 사다리를 성공적으로 오른 직장인으로서, 나라 일을 걱정하며 열심히 일해온 공직자로서 미덕을 가진 인물이다. 그러나 모든 것에는 상반되는 두 얼굴이 있다. 오늘 강 장관이 기뻐하며 발표한 한미 간의 통화 스와프만 해도 우리 외환시장의 안정을 가져올 것이라는 긍정적 얼굴도 있지만 장하준 교수의 지적처럼 하루 외환거래액 2조 달러로 커버린 세계의 외환시장에서 300억 달러 규모의 통화 스와프에 불과하니 폭풍우 속에서 우산 하나의 힘밖에는 발휘할 수 없는 얼굴이 있다. 또 스와프를 요청해 쓸 경우 우리는 달러에 대한 이자는 리보 금리로 많이 물고 원화에 대한 이자는 받지 못하는 불리한 게임을 하게 되는 부정적 얼굴도 있다. 강 장관도 비슷하다. 그가 개인으로서는 미덕이 많다 할지라도, 현재의 정치∙경제 정국에서 그가 장관을 계속함으로써 발휘할 미덕은 이제 별로 없어 보인다. 경제팀들은 외국의 금융기관이나 언론의 신뢰를 잃어, 한국의 위기설을 확산되게 만든 측면이 있다. 국내에서도 시장과 국민의 신뢰를 잃지 않았다 할 수 없다. “정부의 외환 정책 카드가 읽힌다”며 외환을 두고 작전을 펴는 세력들을 기 펴게 만든 측면이 있었음도 부인하기 어렵다.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한 신뢰가 우리 경제에는 다시 만들어져야 한다. 그래서 위기에 대한 공포를 누르고 국민들이 무조건 지갑부터 꽁꽁 닫아 경제가 더 안 돌게 할 것이 아니라 정부를 믿고 따르게 해야 한다. 미안하지만, 누구나 떠나야 할 때가 있다. 미안하지만, 떠나야 할 사람은 떠나야 한다. 박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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