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이나 찹살떡을 먹으면 합격한다’ 따위의 시험 관련 속신은 셀 수도 없다. 문제를 잘 풀라고 휴지를 주고, 정답을 잘 찍으라고 모형도끼를 주고, 시험에 붙으라고 엿을 주는 상황이 흔하다.
특히 대입수능 같은 중요한 시험을 앞둔 학생들은 스트레스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속신에 기댄다. 검증되지 않은 이런 속신들을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따른다.
국립민속박물관 김현경 연구원이 여고생들의 공부와 시험에 관한 속신을 연구했다.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아동에서 성인으로 변하는 전이기적 단계인 고등학생, 그 중에서도 오랜 세월 민간신앙의 주재자로서 신앙전승의 중심적인 구실을 해온 여성, 이 가운데서도 여고생으로 범위를 좁혔다.
속신 7547건을 조사했다. 공부와 시험에 관한 속신은 대부분 음식과 연관이 있다. 엿, 초콜릿, 사탕, 찹쌀떡, 껌 등이 시험에서 행운을 불러온다고 여겨지고 있다. 고기와 생선은 영양가가 풍부한 고단백식이라는 과학성이 작용해 시험 공부할 때 도움이 되는 음식으로 분류됐다.
반대로 계란 미역국, 기름진 음식과 같이 미끄러운 음식은 불길하다는 이유로 기피되고 있다. 빵과 죽은 이름 그대로 ‘빵점 맞는다’, ‘죽 쑨다’는 상징으로 수용된다.
신체와 학용품 등에 얽힌 속신도 많다. 몸을 씻는 것은 대부분 부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시험 전에 씻으면 공부한 것 다 잊어버린다’, ‘시험 전에 손톱 자르면 시험 망친다’, ‘시험 전에 머리 자르면 다 까먹는다’ 등에 학생들은 굉장한 믿음을 보이고 있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의 물건을 지니면 행운이 온다는 믿음도 학생들의 마음에 자리 잡고 있다. ‘공부 잘하는 아이의 방석이나 학용품을 가지고 있으면 행운이 온다’, ‘공부 잘하는 아이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으면 시험을 잘본다’ 등을 철석 같이 믿고 있다.
김 연구원은 수험생들이 이처럼 초인적인 것을 신뢰하는 까닭을 긍정적으로 분석했다. 이러한 믿음은 이루고자 하는 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또 욕구가 좌절됐을 때도 초인적인 힘을 탓하면 방어와 해소가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대입에서 낙방한 여학생이 시험을 앞두고 아침에 미역국을 먹었거나, 목욕을 했거나, 손톱을 깎았다면, 불합격의 원인 행위를 찾은 셈이다. 욕구 실현의 실제 문제였을 자신의 실력을 나무라지 않은 채 좌절감을 해소할 수 있다.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재기의 힘을 얻게 된다.
한편, 아기자기한 속신들을 생활 속으로 끌어들이는 관행의 뿌리는 깊다. 배냇저고리를 구해 수험생 자녀에게 입히는 부모, 여학교에서 방석을 훔쳐내는 남자 수험생도 드물지 않다. 생리대, 생리 팬티, 지우개, 꽃잎, 달걀껍질, 짚, 동물털, 이쑤시개, 붓, 한지, 손수건, 사진, 조약돌, 검정콩, 반지 등 속신의 대상들도 다양하고 구체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