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거대하게 휘몰아치는 역사를 기록하는 서기였다.”
‘광장’ 발간 50주년을 바라보는 소설가 최인훈(72)은 자신을 이렇게 규정했다. “‘광장’의 모티브가 됐던 1960년의 4.19 혁명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우둔했던 사람들이 시대의 문제에 대해 눈을 뜨면서 총명해지고, 영감이 부족해서 허덕이던 예술가도 새로운 발상으로 예술적 결과물을 내놓던 시대였다”고 회상했다.
“나는 단지 그 시대에 그 장소에 있었던 것뿐이고 역사가 비추는 조명에 따라 내 눈이 본 것을 글로 옮긴 것 뿐”이라며 “20대 중반의 어린나이, 평범한 청년이었던 내가 시대의 큰 흐름을 겪고, 그 사건에 대해 문학이라는 강력한 형식을 가지고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그때는 역사를 생생히 기록하는데 만 너무 급급했다. 책을 완성하고 10년, 20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다. “1960년 광장 초판의 ‘작가의 말’에 썼던 그 시대에 대한 내 심정은 아직도 생생히 살아 있다”며 “당시는 문학으로서의 수사적인 면을 다듬기 보다는 역사를 증언한다는 마음으로 숨 가빴을 때다. 독자들은 이 책을 소설로 받아들여야지, 그 시대의 기록으로서 받아들이도록 내가 요구하는 것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1970년 이후부터 내용을 조금씩 수정해서 개정판을 냈다. “신판이 나올 때 마다 현대적으로, 그리고 기록의 단계를 넘어 문학적 가치를 갖도록 많이 고쳤다”고 밝혔다. “문학은 대부분 작가가 생을 마감한 이후 다음 세대들이 그 가치를 평가한다. 오랜 시간 동안 그 가치가 소멸하지 않고 살아있게 하기 위해서는 수정하고 좋은 글들을 덧붙여 조금이라도 더 나아진 글을 독자들에게 보여줘야 한다”는 사고다.
문학인생 50주년을 맞아 펴내는 ‘최인훈 전집’ 15권에 조금 고친 ‘광장’이 들어가 있다. 전집은 ‘회색인’(1963), ‘서유기’(1966), ‘총독의 소리’(1967~1968) 등을 망라한다. 1980년 12권 세트로 간행된 이후 28년 만에 오기 등을 바로 잡아 펴내는 전집이다.
그는 지금까지의 글들을 재정리하는 일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새로운 글을 발표할 계획도 있다. “2001년 교수직에서 정년퇴임하고 그 이후에는 시간이 많아 옛날에 보던 책을 되풀이해서 보고 글도 썼다. 쓴 글들을 모아보니 지금이라도 한권 분량의 책을 낼 정도의 원고는 됐다.”
그는 “장편 소설은 아니고 여러 글들을 모은 소설집 형태가 될 것 같다”며 “광장, 화두가 시대를 따라 같다면 이번 글을 좀 더 전위적이고 순수탐미적인 글들이 될 것 같다”고 전했다.
최인훈은 졸업 1학기를 남겨두고 4학년 2학기에 서울대 법대를 중퇴했다.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수많은 소설로 문학사에 큰 업적을 남긴 그에게 대학졸업장 따위가 무슨 가치가 있을까 싶다.
그러나 그는 “졸업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가슴을 치고 통탄한다”고 털어놓았다. “맏이인 나를 대학에 보내려고 고생이라는 고생은 다 하신 부모님이며 또 내가 학교를 그만 둔다고 할 때 고통스러워 한 부모님이다”며 “그러나 학교를 그만 두던 그 당시에는 내가 그런 부모의 심정을 헤아릴만한 인간이 못됐다”고 후회했다.
“2004년에 서울대 법대총동창회에서 ‘자랑스러운 법대인 상’을 주더라. 졸업은 못했지만 이런저런 성과로 나를 준회원으로 인정해준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어 “마침 그해 미국에서 아버지가 들어오셨다. 졸업장을 보상해줄 수 는 없지만 ‘자랑스러운 법대인 상’ 이라도 아버지께 보여줄 수 있어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른다”라며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 내가 부모가 되고, 자식과 손자가 생기고 나서야 내 부모의 심정을 알겠더라”라고 소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