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정부가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가 즐겨 사용했던 행정용어를 정비하겠다고 한다. 국민의 정부가 만든 조어 ‘신지식, 신지식인’, 참여정부가 애용하던 단어 ‘혁신’과 ‘열린’ 등이 정비작업의 1차 대상이 될 것같다. 새 정권이 행정용어를 정리하여 바꿔 쓰려는 태도는 타당한 면이 있다. 정권 따라 이념적 준거, 정치지향, 정책방향이 다를 때는 행정용어를 바꿔 써야만 이미지, 지향점, 방향성이 제대로 표현된다. 사실, 정권이 바뀌면 행정용어 말고도 바뀌는 것이 많다. 우리는 역대정권 교체기마다 그런 변화를 경험하여 왔다. 정부조직이 바뀌고, 그 조직의 수장이 바뀌었다. 장기목표의 정책이 하루 아침에 바뀌기도 했다. 부수적인 일이지만 최상급주택 건설시장의 지형도까지 바뀌었다. 최근 정권이 바뀌었을 때마다 새로 요직을 맡은 사람들 때문에 수천 채의 최상급 주택 수요가 새로 있었다고 한다. 어쨌거나, 과거 정부들이 사용했던 행정용어들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는 점을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가 14일 지적하며 그 예로 ‘신지식인, 혁신, 열린, 상황점검회의’ 등의 단어를 지적했다. 이번에 지적된 단어 중 ‘신지식인’이 정리된다면 찬성할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국민의 정부 시절 강조된 ‘신지식인’은 억지조어인 측면이 있다. 언론에 당시 그렇게 자주 등장했지만 사전에 표제어로 실리도록, 어엿한 단어로 정착된 바 없는 것을 보아도 확인된다. 또, 영화감독 심형래를 대표적 신지식인으로 선정하였지만 신지식인의 정의는 모호했고 대학가, 지식인 사회에서는 반감이 컸었다. 지식인 사회는 ‘신지식인’이 대두되자 자신들은‘쓸모 없는 구지식인’이라 조롱 받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는 이번에 몇 용어만 사례로 들었지만 조사해보면 참여정부가 자신들의 이미지, 정책의도에 맞게 적극적으로 사용해온 용어들은 꽤 많을 것이다. 이번에 지적된 ‘혁신, 열린, 상황점검회의’ 말고도 내 머리 속에는 ‘로드맵, 균형발전, 사회적 자본, 지속 가능성, 전략’이 떠오르며 ‘양극화’가 스쳐간다. 많은 단어 중 새 정부가 어떤 기준에 따라 참여정부가 사용해온 행정용어를 정리할 것인가, 궁금하다. 새 정부가 참여정부의 핵심정책이었던 혁신도시 건설 등 지역 균형발전 전략을 크게 수정하는 작업에 착수했다는 뉴스를 보면서 ‘혁신, 균형발전’ 단어가 정비대상이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정책의 수정과 행정용어의 정비는 다른 차원의 일이다. 이전 정부가 남겨놓은 행정용어의 정비는 새 정부의 색깔에도 맞으면서 합리적인 기준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혁신’이란 표현을 공무원 사회에서 너무 많이 써서, 또 ‘열린 행정’처럼 ‘열린’을 붙여 쓰는 단어는 ‘열린우리당’을 연상시켜서 정비해야 한다는 식의 기준은 좀 그렇다. 유아적이다. ‘혁신’은 사실 유의어 ‘변화, 개혁’보다는 참신한 단어이다. 그러니 '혁신' 대신 '변화'를 쓰는 정도의 용어 정비라면 그대로 두는 것이 낫다. 또 ‘열린’이란 단어는 “편견이 없는, 너그러운, 개방적인”을 함의하며 우리 사회에서 쓰여왔다. 출판사 ‘열린책들’이 설립된 것이 1986년이고 매주 일요일의 TV프로그램 ‘열린음악회’가 시작된 것이 1993년이다. 열린우리당이 창당 되기 훨씬 이전의 일들이다. 사회학 공부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이제 ‘열린 마음’으로 ‘열린 자세’로 우리가 속한 사회를 위해 기여해야 한다고 사람들은 준비하고 있다. 실용 보수는 행정용어 선택에서 필요하면 진보를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니 행정용어를 정비할 때 청와대도 열린 마음, 열린 자세여야 한다. 그리고 행정용어 정비를 일관되며 합리적인 기준으로 신중하게 할 필요가 있다. “말 속에 묻혀 일은 뒷전”이었다는 평가의 참여정부는 그 말 많음 때문에 국민들이 혐오에 가까운 염증을 맛보았지만 행정용어 선택에 일관된 논리를 적용하는 기본 자세는 갖추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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