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인간 상태인 환자의 존엄사를 인정하는 법원의 결정에 대해 소송 당사자인 신촌 세브란스병원이 17일 대법원에 '비약 상고'하겠다고 밝히자 종교계와 학계, 시민들은 각각 엇갈린 반응을 나타냈다.
기독교교단협의회 박용웅 생명윤리위원장은 "세브란스병원은 기독교 재단이기 때문에 "이번 상고는 예상하고 있던 당연한 결과"라며 "존엄사에 대해 국민의 80~90%가 찬성할 지라도 생명에 관한 문제는 다수결의 원칙이 기준이 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천주교 서울대 교구 생명위원회 박정우 사무처장은 "이번 판결을 계기로 윤리적, 의학적 잣대를 모두 고려해 존엄사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만들어져야 할 것"이라며 "가망 없는 환자를 연명하게 하는 치료도 무의미하지만 자칫하면 무분별한 안락사를 용인할 여지도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대 법의학 이윤성 교수는 "법원의 '존엄사 인정' 판결을 지지한다"면서도 "세브란스병원이 왜 항소하는지 이유를 정확히 모르는 상황에서 병원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을 아꼈다.
시민들 사이에서는 병원의 상고 결정에 반대한다며 대법원에서 '존엄사를 인정하는 판결'이 나와야한다는 목소리가 대다수였다.
송파구 오금동에 사는 주부 이모씨(51·여)는 "가족을 위해서나 환자를 위해서나 존엄사를 인정해야 한다"며 "그런 면에서 이번 병원의 상고 결정도 적절치 못한 것 같다. 아마 대법원에서도 존엄사를 인정하는 판결이 나올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대학생 이태성씨(25)는 "살 권리도 있지만 죽을 권리도 있다. 생명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윤리적 문제보다는 서로의 행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며 "이번 상고는 솔직히 병원 측의 돈벌이로 해석된다"고 주장했다.
회사원 윤종욱씨(26)는 "이번 병원 측의 상고는 적절치 못한 것 같다"며 "개인의 죽을 권리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 시대의 흐름이기 때문에 대법원 판결이 시대의 흐름에 맞았으면 한다"고 전했다.
현장의 의사들 사이에서도 찬·반 입장이 나뉘어 눈길을 끌었다.
세브란스병원 의사 김모씨(47)는 "환자들의 고통과 남아있는 사람들의 고통을 생각해 존엄사를 인정해야 한다"며 "사람은 살리지도 못하고 남아있는 사람들만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있고 또 장기간 입원해 있다고 해도 소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같은 병원 의사 전모씨(30·여)는 "생명연장이란 것이 어쩔 수 없이 진행되는 측면이 있다"며 "존엄사에 대한 최종결정은 환자가 결정할 일이지만 의사들도 최대한 많은 선택항을 환자에게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브란스병원 사회복지팀 이모씨(24·여)는 "환자가 의사표현을 못한다고 해서 가족들이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며 "환자가 죽고 싶어 하는지 아니면 더 살고 싶어 하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고 더구나 가족들이 결정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브란스병원은 이날 오전 "종교계와 법조계, 의료계 등 각계 전문가들과 7차례에 걸친 내부 검토를 거친 결과 대법원에 비약적 상고를 하기로 최종 결정했다"고 밝혔다.
서울서부지법 민사12부(부장판사 김천수)는 지난달 28일 식물인간 상태인 김모씨(75·여)의 인공호흡기 사용을 중단해 달라며 자녀들이 병원과 담당 의사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고 싶다'는 환자 본인의 뜻에 따라 호흡기를 떼라"고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