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다윈(Charles Darwin) 탄생 200 주년이고 '종의 기원'(On the Origin of Species) 출간 150 주년이므로, 올해의 화두는 단연 ‘진화’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학술 행사들이 계획되었고 진화를 새해 특집으로 다른 대중매체들도 여럿이다. 대략 한 세대 전부터 진화는 지적 작업에 근본적 영향을 미쳐 왔다. 이제 진화를 고려하지 않은 지적 작업은 쓸모가 작다. 그러나 진화는 이해하기 쉬운 개념은 아니다. 진화란 무엇인가? 체계를 갖춘 진화론을 처음 내놓은 사람은 라마르크(Jean-Baptiste de Lamarck)다. 그러나 그의 이론의 영향은 미미해서 19세기 중엽까지 전통적 세계관이 그대로 통용되었다. 다윈의 진화론은 생명의 기원에 관해 수 천년 동안 당연한 진리로 여겨져 왔던 이론들을 근본적 차원에서 부정했고 과학적 증거들로 떠받쳐진 대안적 체계를 내놓았다. 다윈의 이론은 '변이적 진화론'(theory of variational evolution)이라 불린다. 개체들의 변이가 진화의 원동력이라는 주장이다. 이 이론은 종래의 본질론(essentialism)에 대립되는 통찰이었다 다윈주의(Darwinism)라고 불리는 다윈의 진화론은 다섯 개의 하위 이론들로 이루어졌다. 첫째는 종들의 비항상성(nonconstancy) 이론이니, 종들은 늘 같은 모습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서 모습이 바뀐다는 얘기다. 둘째는 모든 유기체들이 공통 조상들로부터 나왔다는 공통 파생 이론 (theory of common descent)이다. 셋째는 종들의 점진적 재구성을 통해서 진화가 이루어진다는 점진론이다. 넷째는 종의 분화 과정을 거쳐서 종들의 다양성이 증가한다는 주장이다. 즉 한 종의 개체군들의 일부가 변이를 거쳐서 새로운 종으로 진화하며 그러한 과정이 끊임없이 이루어지면서 종들이 다양해졌다는 얘기다. 다섯째는 자연 선택 이론이니, 생존에 적합한 특질을 지닌 개체들이 살아 남아서 자손들을 남기며 그런 과정을 통해서 진화가 이루어진다는 주장이다. (자연 선택이란 말은 자연이 선택의 주체라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자연이 의도적으로 선택하는 것은 아니다. 자연 선택에서의 선택엔 의도적이란 뜻이 담기지 않았다.) 진화론은 사람을 포함한 지구 생물계를 살피는 일에 가장 근본적이고 튼실한 틀을 제공한다. 그것은 생물체들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바뀌었고 왜 지금의 모습을 하고 있는가 아주 설득력있게 설명한다. 도브잔스키(Theodosius Dobzhansky)는 “생물학의 어떤 것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 진화에 비추어보지 않는 한"(Nothing in biology makes sense, except in the light of evolution.)이라고까지 표현했다. 진화론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사람의 몸과 마음의 본질과 성격에 관해서 직관적이고 상식적인 이론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진화 과정을 통해서 살아 남도록 다듬어졌으므로, 사람의 몸과 마음은 현상들의 아래에 있는 실재보다는 자신과 가까운 환경에 관한 정보들을 잘 처리하도록 만들어졌다. 이런 사정은 근본적 과학 이론들이 모두 반직관적(反直觀的)이라는 점을 깔끔하게 설명한다. 상대성 이론과 양자 역학은 반직관적인 이론들을 대표한다. 사회과학 분야에선, ‘비교우위 이론’이 훌륭한 예다. 바로 이 점이 지적 모험을, 특히 사회과학과 인문학의 추구를, 어렵게 만든다. 사회과학과 인문학의 모든 이론들은 본질적으로 사람의 본질과 성격에 대한 가정들에 바탕을 둔다. 그러나 다윈주의 진화론이 제공하는 강력한 추진력이 없이는, 사람의 본질과 성격에 대한 가정들이 직관적이고 상식적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렇게 얄팍한 견해를 바탕으로 삼으면, 사회과학과 인문학의 이론은 잘못에 빠질 가능성이 클 뿐 아니라 주제를 깊이 그리고 멀리 추구할 수 없다. 진화론이 자연 선택을 진화의 기구로 보는 이론이므로, 자연히, 진화론에서 근본적인 문제들 가운데 하나는 자연 선택이 작용하는 단위다. 오랫동안 진화론자들은 유기체가 그런 단위라고 상정해왔다. 모두 자명한 이치라고 여겨온 이 가정은 그러나 여러 가지 어려움들을 만났다. 그것에 바탕을 둔 이론들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들이 너무 많았다. 마침내 20세기 중엽에 여러 학자들이 그것의 타당성에 근본적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인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는 저서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에서 진화의 기본적 단위는 유기체가 아니라 유전자며 그런 관점에서 살펴야 생명 현상과 진화 과정이 제대로 설명된다는 주장을 폈다. '유전자적 관점'(gene’s-eye view)이라 불린 그 이론은 다윈주의 진화론을 한껏 밀고 나간 이론으로, 진화론에 혁명적 충격을 주었다. '유전자적 관점'에서 살피면, 사람과 같은 유기체들은 유전자의 뜻을 수행하고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나르는 ‘수레(vehicle)’다. 다윈주의 진화론은 원래 생물적 진화에 관한 이론이다. 다윈주의가 개체들이 모인 사회에도 적용되려면, 다윈주의가 제시한 진화의 메커니즘이 사회적 현상들에서도 작용해야 한다. 그렇게 생물적 진화와 사회적 진화를 연결해주는 이론이 ‘보편적 다윈주의(Universal Darwinism)’이다. 이 개념은 도킨스가 처음 썼는데, 헨리 플로트킨(Henry Plotkin)의 정의를 따르면, “다윈의 진화의 원리들은 우주의 모든 곳의 모든 생명들에게 근본적이라는 생각"(the idea that Darwin’s principles of evolution are fundamental to all life everywhere in the universe)이다. 즉 유전되는 특질이 있고, 그 특질에 변이들이 존재하면, 선택 과정을 통해서 환경에 잘 적응된 개체들이 살아남아서 널리 퍼진다. 유전되는 특질에는 아무런 제약이 없다. 따라서 문화도 진화한다. 경제도 물론 끊임없이 진화한다. 슘페터가 '창조적 파괴'라고 부른 현상도 환경에 보다 잘 적응한 개체들이 살아남는 자연 선택 과정을 가리킨 말이다. 실제로 진화 경제학은 슘페터의 업적을 바탕으로 삼았다. 근년에 진화론을 잘 설명한 책들이 많이 나왔다. '종의 기원'은 가장 기본적 저작이다. 이제 고전이 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는 다윈주의의 주류를 대표하는 저작이다. 진화에 대한 지식을 대중에게 친절하게 설명한 대중화 저자들 가운데 가장 인기 높은 사람은 매트 리들리(Matt Ridley)다. 그의 '덕성의 기원'(The Origins of Virtue)은 진화론이 사회 철학에 대해 지닌 함의를 잘 설명했다. 복거일(시사평론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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