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5일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와 만나 "북·미 양자 회담 결과를 보고 다자 회담을 진행하겠다"고 밝혔지만, 미국은 북한이 완전히 핵을 포기할 의지가 있는지에 의심을 품고 있다.
미국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이 핵무기를 완전히 포기하는 방향으로 나가길 희망하기만, 북한의 잇따른 도발로 미국은 북한과의 직접대화에 선뜻 나서길 꺼려하고 있다.
북한은 지난 2007년 핵무기를 불능화하기로 합의했지만, 이행 단계에서 곧바로 복구 절차에 들어갔었다. 지난 4월과 5월에는 2차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으로 6자회담의 성과물인 북핵 선언은 사실상 백지화됐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할 때까지 북한은 긴장을 한껏 고조시키며 국제사회의 제재 대응에 반발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과 만나 수감된 미 여기자 2명의 석방을 이끌어내며 북한은 비로소 유화 제스처를 보내기 시작했다.
북한이 조건부로 6자회담 테이블 복귀 의사를 밝힌 다음날인 6일 미국 국무부는 관련 논평을 내지 않았다. 미국과의 양자 회담의 결과에 6자회담 복귀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북한의 속내가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청한 국무부 고위 관리는 "미국은 북한이 확실히 6자회담에 복귀한다는 보장이 없을 경우 양자 회담에 동의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전했다. 그는 "미국은 7일 중국으로부터 김 위원장의 의중을 듣게 되길 바라고 있다"고 덧붙였다.
오바마 행정부는 그동안 꾸준히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위해 양자회담에 나설 생각이 있음을 밝혀왔다. 북한과의 만남을 지렛대삼아 6자회담에서 확실한 성과물을 도출해내겠다는 말이다.
지난해 12월 열렸던 6자회담을 마지막으로 북한은 지난 4월 "영원히 6자회담은 없다"라며 복귀를 완강히 거부하다 이번 원 총리의 방북에서 조건부로 입장을 철회하면서 북한은 2000만 달러의 원조를 약속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스콧 스나이더 아시아재단 한미정책센터 국장은 "북한의 핵 야망이 포기되지 않는 한 미국이 북한과의 양자 회담이나 다자 회담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둬낼 수 있을 지는 불확실하다"고 지적했다.
미국 싱크탱크 랜드연구소의 브루스 버닛 연구원은 "북한은 미국에 미끼를 던져 미국을 양자 회담으로 유인하고 있지만, 비핵화를 이뤄낼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은 비현실적"이라고 분석했다.
익명을 요구한 미 국무부 관리는 "북한을 양자 회담에서 6자회담에 복귀시키기 위해서는 준비 과정에서 회담 참석자와 장소 등에 대한 분명한 결정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아시아 전문가인 리처드 부시 3세는 "미 행정부가 양자 회담을 위해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 특사를 평양에 보내 북한의 입장을 확실히 평가하고, 비핵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겠지만 양자 간 협상에 나서진 않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그는 또 "김정일은 상황이 바뀌었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북한은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해제에 목적을 두고 있지, 핵무기 포기를 목표로 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완전하고 입증이 가능한 형태로 포기할 의지를 보일 때까지 6자회담의 향배는 불투명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