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통 박진 의원이 윤석열 정부의 첫 외교부 장관에 발탁돼 미국 일본 등 세계 각국 언론의 조명을 받고 있어 화제다. 정통외교통 등장으로 꽉 막힌 외교가 숨통이 트일 전망이다. 박진 외교부 장관 후보는 외교관 출신 정치인이다.
 
박진 장관 후보는 당내 경선을 제외하면 출마한 선거에서 패배한 적이 없다. 정치권에 입문은 2001년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총재 공보특보 시점이다.
  2021년 7월13일 "문재인 정부 4년간 무너진 공정과 정의를 세우겠다"며 국민의힘 경선 후보로 대권 도전을 선언했다. 캐치프레이즈로 선진국형 외교안보대통령을 표방했다.
 
비전발표회와 3대 공약 PT 발표회에서 뛰어난 발표실력과 깔끔한 PT, 외교안보분야에서의 전문성을 보여주며 타 후보들 사이에서 주목을 받았다. 3대 공약 PT 질의응답 시간에 홍준표 후보의 질문을 받아 미중 갈등 국면에서 중국과 미국 상대 외교 비전을 설명했다. 홍준표 후보의 입에서 "엑설런트합니다"(최고다)라는 말이 나와 주목을 받았다.
 
박진 장관후보는 대선 경선 후보 시절 한 방송 인터뷰에서 자신을 삼국시대 최고 무신 ‘유비’에, 경쟁자인 최재형 후보를 ‘관우’, 윤석열 후보를 ‘장비’에 각각 비유해 화제를 낳았다. “최재형 후보는 소신과 강단이 있는 사람이고 윤 후보는 선이 굵고 대범한 결단력을 가진 사람”이라면서 이 같이 말했다. 본인을 유비로 비유한데 대해 “4선 의원으로서 지구력이 있다. 굳이 말하자면 내유외강형”이라며, 난새의 소용돌이 속에 동생들을 잘 보살피고 백성을 살핀 그런 정의로운 인물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당내 대표적인 ‘미국통’으로 꼽히며, 윤 당선인의 한미정책협의대표단장을 맡아 방미 일정을 수행하기도 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인연은 특별하다.
 
2008년 한미의원외교협의회에 참석해서 바이든과 독대한 적도 있다. 16대에 대한민국 정치 1번지인 종로구에서 당선하며 국회에 입성했다. 이후 17대, 18대 총선에서도 승리하며 내리 3선을 했다. 정치 1번지라는 타이틀 때문에 여야 중진 정치인들은 물론 무소속 거물들도 대거 출마하는 종로에서 3선에 성공하며 자신의 입지를 굳혔다. 17대에서 여당(열린우리당) 김홍신과의 매치에서 승리, 18대 총선에서는 당시 야당의 대표이던 손학규와의 1:1 매치에서 승리를 거두며 과연 종로의 터줏대감임을 증명했다.
경기고와 서울대를 나온 박 장관 후보는 1977년 제11회 외무고시에 합격하여 1978년 대학 졸업 후 외무부 사무관으로 1년간 근무했고, 1980년부터 1983년까지 해군사관후보생 과정을 거쳐 해군 장교로 복무했다. 이후 1983년 국비유학생 7기로 선발되어 1985년 하버드 대학교 케네디 스쿨에서 행정학 석사학위, 1993년 옥스퍼드 대학교 세인트 안토니 컬리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D.Phil)를 취득했다. 명예학위로는 상명대학교 명예 행정학 박사학위가 있다.
1989년부터 1년간 킹스 칼리지 런던 연구원을 거쳐 1990년 뉴캐슬 대학교 정치학 조교수로 임용되어 3년간 근무했다. 1993년 2월부터 1996년 7월까지 김영삼 정부 청와대의 대통령 해외담당 공보비서관을 지냈는데, 한국을 방문한 국빈과의 회담에서 통역을 담당하기도 했다.
 
빌 클린턴에게 김영삼의 좌우명 '대도무문'을 '고속도로에는 톨게이트가 없다(A freeway has no tollgate)'라고 번역해 준 것이나, 넬슨 만델라에게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라는 말을 '수탉의 목을 졸라도 동은 튼다(Strangle the rooster, still the dawn breaks)'라고 번역해 줘서 좋은 분위기를 이끌어 낸 것은 꽤 유명한 일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