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정희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20대 대선 사전투표 부실 관리의 책임을 지고 결국 자리에서 물러났다. 현직 대법관인 노 위원장은 지난 2020년 11월 취임했고, 관례대로라면 대법관 임기인 2024년 8월까지 위원장을 맡게 돼 있었다. 임기를 2년 4개월 남겨둔 상태에서 불명예 퇴진을 한 것이다. 그는 지난달 5일 확진·격리자 사전투표 현장에서 이른바 '소쿠리 투표'로 불리는 극심한 혼란이 벌어진 이후 책임론과 함께 거센 사퇴 압박을 받았으나 조직 쇄신 등을 통한 정면 돌파 의지를 보여왔다. 노 위원장의 사의 표명은 '소쿠리 투표' 사태 발생 이후 44일만, 대선이 치러진 지 40일 만의 일이다.
사전투표 부실 관리 사태는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의 강한 질타를 받았다. 국민의힘은 노 위원장의 사퇴 촉구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했고, 민주당 일각에서도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대한변협 등 사회 각계의 사퇴 촉구도 잇따랐다. 선관위 내부에서는 상임위원 15명이 노 위원장의 대국민 사과와 거취 표명을 요구한 데 대해 일선 직원들이 역으로 상임위원들의 사퇴를 요구하면서 내부 혼란이 심화했다.
시민단체가 노 위원장을 고발한 사건은 현재 경찰이 수사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침묵 내지 버티기로 일관했던 노 위원장이 갑자기 사퇴를 결심한 이유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그가 사의를 표명한 전체 선관위원 회의는 대선 사전투표 부실 관리 사태 수습을 위해 꾸려진 '선거관리 혁신위원회'의 쇄신안을 보고받는 자리였다. 사의 표명은 갑작스럽게 이뤄졌다고 한다. 회의 후 선관위원들과의 저녁 자리에서 "국민에게 송구한 마음과 책임감을 많이 느꼈다"면서 "지방선거 준비 때문에 사퇴를 미루고 있었다"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노 위원장의 사퇴가 만시지탄이기는 하지만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불필요한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는 점에서는 다행스러운 일이다. 헌법기관인 선관위는 민주주의의 근간인 선거를 엄정하게 관리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이 있다. 하지만 지난해 4·7 보궐선거 과정에서 '내로남불' '위선' 등의 표현을 사용할 수 없도록 해 중립성 논란을 초래했다. 이번 대선에서는 세계 최고라던 투표관리 역량이 의심받는 사태를 초래하면서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선관위는 논란의 중심에 섰던 노 위원장의 퇴진을 계기로 신뢰 회복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노 위원장 사퇴 배경에 대해 선관위는 "노 위원장은 조직이 빠르게 안정되고 있다고 판단했고, 지방선거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환경이 조성됐다고 봤다"고 밝혔지만, 시중에는 지금의 선관위가 40일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를 제대로 치를 수 있을지 우려하는 시선이 없지 않다. 자체 쇄신안을 마련했다고 하나 그것으로는 여전히 부족해 보인다. 선관위는 정치적 편향이나 무능함에 대한 시비가 다시는 불거지지 않도록 지속적인 쇄신에 나서야 할 것이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