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21일 국회에서 진행된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보면 과연 지금이 국내외적 위기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 대표와 국민의힘 권성동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 대표의 연설은 위기 극복을 위한 대책과 미래에 대한 비전보다는 상대 당에 대한 비난과 증오로 가득 찼다.
권 대행은 연설의 상당 시간을 문재인 정부의 실정을 공격하는데 할애했다. 전 정부의 근시안적, 분열적 정책이 지금 나타나는 여러 문제의 주범이라는 것이다.
전날 박 대표도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 하락을 거론하면서 출범한 지 두 달여밖에 되지 않은 정부에 탄핵을 경고했다. 두 대표가 정치의 의미, 심화하는 복합 위기, 피폐해지는 민생, 대표 연설을 교섭단체로 한정한 국회법 취지 등을 충분히 인식하고 단상에 올랐는지 의문이다.
권 대행은 이날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화와 김대중 대통령의 정보화에 이어 대한민국의 세 번째 도약을 준비해야 한다"며 "세 번째 도약으로 글로벌 선도국가가 돼야 한다"고 밝혔다. 문제는 이를 실현할 윤석열 정부 5년의 청사진은 아직 선명히 드러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연설도 마찬가지다.
그는 또 연금, 노동, 공공 부문 등의 개혁을 강조하면서 "여야의 협치를 넘어선 사회적 대타협"의 필요성을 주장했으나 역대 정부도 대부분 출범 초기에는 비슷하게 의욕을 보였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심각한 문제가 드러나 이제 더는 방치하기 어려운 분야를 수술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방향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방법이다. 권 대표가 말한 사회적 대타협은 집권 세력의 의지만으로 불가능하다. 국회 다수 의석을 차지하는 야당의 협조뿐 아니라 관련 이해 당사자들에 대한 설득, 그리고 국민의 폭넓은 지지가 뒷받침돼야 한다.
위기 대책을 논의하고 민생을 보듬어야 할 국회는 아직 후반기 원 구성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행정안전위원회와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가 마지막 쟁점이라고 한다. 상임위 배분이 국가 위기 상황에서 국회를 50여 일째 공전시킬 정도의 국가 중대 사안인지 모르겠다.
아무리 그럴싸한 명분을 내놓더라도 국민들 눈에는 민생과는 무관한 그들만의 이권 다툼으로 비친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극복하지 못한 듯한 새 정부의 국정 운영과 인사 난맥도 실망스럽다. 정치권의 행태는 퇴행적인데 국민만 미래지향적이길 바라는 것은 공허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개혁에 대한 호응과 지지를 얻으려면, 또 수권 정당으로서의 새로운 면모를 입증하려면 여야 모두 국민의 이익과 국가의 미래를 놓고 경쟁해야 한다. 상대방에게 나쁜 이미지를 덧씌워 번갈아 집권하는 것은 국가적 불행이다. 여야는 모두 대통령 선거 당시 협치를 약속한 바 있다. 협치는 야합이 아니다. 여야 모두 어차피 둘 중 하나는 선거에서 승리하는 기득권 카르텔 구조에 기대지 말고 이제는 국민의 승리를 위해 함께 협력하는 진정한 협치의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