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아시아 순방 중 대만을 1박 2일 방문하면서 미·중 관계가 격랑 속에 빠져들고 있다. 펠로시 의장은 차이잉원 총통과 면담하고 오찬을 함께 했다. 중국의 아킬레스건으로 꼽히는 인권 문제를 의식한 듯 인권박물관을 방문하고 중국 반체제 인사를 면담했다.  중국 왕이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3일 담화에서 "머리가 깨지고 피를 흘릴 것", "불장난하면 불에 타 죽는다"는 등 강경 언사를 쏟아냈다. '불장난'은 지난달 28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통화할 때 썼던 표현이다.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을 전후해 미·중 양국은 전투기를 출격시키거나 해역에 항공모함을 띄우는 등 팽팽한 군사적 대치 상황을 연출했다. 펠로시 의장이 탄 C-40C 수송기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대만 쑹산 공항으로 향하면서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남중국해 항로를 피해 우회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태지역 요충지 대만해협은 미·중 긴장이 고조될 때마다 군사적 대치가 재연되는 곳이다. 중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미수복 영토' 대만에 대한 주권은 중국이 갖고 있고 대만은 반드시 조국의 품으로 돌아온다는 자신감이다. 미국은 1979년 대만관계법을 제정해 대만에 방어용 무기를 제공하고 대만을 위협하는 무력에 저항할 역량을 유지하도록 하면서도 직접적인 군사적 개입은 명시하지 않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래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지만 중국이 대만을 무력으로 통일하려 한다면 대만을 방어하겠다는 입장으로 다소 바뀌었다. '불장난' 등 강도 높은 표현을 동원한 중국의 반발과 무력 시위 속에 펠로시 의장이 미 군사력의 호위를 받아 대만 방문을 강행한 것은 변화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미·중 갈등은 동북아는 물론 한반도 정세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북한은 이날 외무성 대변인이 조선중앙통신 기자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을 빌어 "미국의 파렴치한 내정간섭행위와 의도적인 정치·군사적 도발 책동이야말로 지역의 평화와 안전을 해치는 화근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며 중국에 대한 강력한 지지를 피력했다. 가뜩이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세계 에너지 가격이 폭등하고 식량 위기가 가중되는 때다. 한반도 비핵화 등의 현안을 풀어가는 데 중국의 협조가 필요하다. 수출 등 대중 무역 의존도도 높다. 한국과 일본, 대만을 잇는 미국의 반도체 동맹은 중국에는 위협적이다.  대만을 둘러싼 미·중 갈등이 한반도에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와 같은 논란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중국이 북한, 러시아와 공조를 강화하고 미국이 한국, 일본과 동맹을 다지는 진영 대결이 펼쳐지면 우리의 외교적 공간은 좁아진다. 미·중 양국이 국내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당분간 강 대 강 국면을 이어갈 것에 대비해 우리 정부는 불똥을 맞지 않도록 면밀하게 관리해 나가야 한다. 우리의 이익을 위해 미국과의 동맹만큼 중국과의 협력이 필요하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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