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을 중심으로 역대급 폭우가 쏟아지면서 대한민국의 심장부인 서울이 사실상 마비되고 각종 피해가 속출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에 따르면 8일부터 내린 호우로 9일 오전 11시 현재 사망 8명, 실종 6명, 부상 9명 등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이재민은 수도권에서만 230세대, 381명으로 집계됐다. 병원, 학교, 주택 등 각종 시설의 침수와 산사태에 따른 피해도 잇따랐다. 또 지하철 역사와 선로에 빗물이 들어차면서 열차가 곳곳에서 멈춰 서고, 주요 도로가 통제되면서 출·퇴근길에 '교통 대란'이 빚어졌다. 처리 용량을 넘어선 강우량이 일차적 원인이지만, 최근 국지성 호우가 잦아진 상황에서 예방 대책이 미흡했던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행정안전부가 중대본을 2단계에서 3단계로 격상한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은 집중호우 대처 관계기관 긴급 점검 회의를 열어 철저한 대응과 신속한 복구를 지시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8일부터 9일 오전 8시까지 서울에서는 서초 396㎜, 강남 375.5㎜, 금천 375㎜ 등 한강 남쪽을 중심으로 300㎜ 넘는 비가 내렸다. 동작구 신대방동은 8일 밤 1시간 동안 141.5㎜의 물폭탄이 쏟아지면서 서울의 시간당 강수량 역대 최고치(118.6㎜·1942년 8월 5일)를 80년 만에 갈아치웠다. 또 이곳에선 하루 동안 총 422㎜ 비가 왔는데, 이는 7월 한 달간 서울에 내리는 평균 강수량(414.4㎜)보다 많다. 경기에서도 여주·양평·광주 등에 350∼400㎜의 비가 쏟아졌다. 문제는 당분간 폭우가 계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비가 그치려면 원활한 대기 흐름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동쪽 오호츠크해 고기압이 공기 흐름을 방해하는 상황에서 현재로서는 공기 흐름을 뚫어줄 요인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기상청은 수도권의 경우 모레까지 100~300㎜의 비가 더 내릴 것으로 예보했다. 서울 중구를 비롯한 전국 47개 시·군에는 산사태 예보 발령이 내려졌다.
 
천재지변은 자연의 영역이지만, 그에 대처하는 것은 인간의 일이다. 이번 폭우는 예견됐던 만큼 침수나 산사태 위험 지역에 대한 선제적 조치와 사회 구성원들의 경각심이 뒤따랐다면 피해 규모를 어느 정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발생한 피해의 일정 부분은 '인재'(人災) 에 해당한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 재산을 지키는 것은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다. 폭우가 며칠간 더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당장은 시설물 점검 등을 통한 피해 최소화가 시급하다. 국민 개개인도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비가 그치고 나면 신속한 복구와 피해자 지원에 정부와 국회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 당면 과제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이상기후에 맞설 근본적인 대책이다. 장마기가 끝난 8월 초에 이렇게 많은 비가 내리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데, 지구 온난화로 이런 현상은 더욱 잦아질 개연성이 크다. 윤 대통령은 이날 "정부는 기후변화로 인한 이상 기상이 일상화된다는 점을 고려해 현재 재난관리체계를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했는데 말로 그쳐서는 안 될 일이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