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대외비 일정이 부인 김건희 여사의 팬클럽을 통해 버젓이 공개되는 일이 벌어졌다. 24일 팬클럽 '건희사랑' 페이스북에 한 사용자가 "공지합니다. 윤석열 대통령, 대구 서문시장 26일 12시 방문입니다. 많은 참석, 홍보 부탁드린다"는 내용의 게시물을 올린 것이다.
 
통상 대통령의 외부 일정은 그 자체가 대외비로, 출입기자단에도 개략적인 내용만 사전 공지된다. 이번 시장 방문 일정은 기자들에게도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대통령 일정이 행사 이틀 전에 장소는 물론 날짜, 시간까지 구체적으로 공개된 것은 국가 안보에 관한 중대 사고이다. 그런데도 대통령실의 대응은 어쩐 일인지 안이하기 짝이 없어 어리둥절할 정도이다.
 
국가 원수 경호에 큰 구멍이 노출됐다면 철저한 진상 조사와 뼈를 깎는 반성, 그리고 확실한 재발 방지 대책으로 기강을 잡고 조직 내의 경각심을 높이는 것이 상식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경호처를 통해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파악해 되풀이되지 않도록 최선의 조치를 하겠다"라고 밝혔으나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다.
 
김 여사 팬클럽과 관련한 보안 사고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5월에는 용산 대통령실 청사 집무실 내부 사진이 팬클럽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공개됐다. 촬영이 제한된 보안 구역인 대통령 집무실에서 부속실 직원이 김 여사의 휴대전화로 찍은 사진이다. 당시 팬클럽 회장이던 강신업 변호사에게 사진을 전달한 사람은 다름 아닌 김 여사 본인이라고 한다.
 
김 여사와 강 변호사는 모두 이제 서로 교류하지 않는다고 밝혔으나 팬카페에 윤 대통령의 외부 일정이 공개되는 사건이 불거지면서 김 여사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권력 핵심부와 팬카페 사이에 여전히 연결 고리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생기고 있다. 윤석열 정부와 김 여사를 위해 만들었다는 팬카페가 오히려 정권에 큰 부담을 주고 있는 셈이다.
 
대통령실이 심각한 국기 문란 사고에도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 혹시 있을지도 모를 '성역'을 의식했기 때문이라면 정말 큰일이 아닐 수 없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청산하기 위해 대통령실을 용산으로 이전했다고 하나 수십 년간 누적된 관성적 행태가 금세 사라질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권력과 가까운 인사들부터 공·사를 철저히 구분하는 등 지나치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자신에게 엄격해야 한다.
 
더구나 이번 사고는 최근 대통령실이 비서관·행정관급에 대한 고강도 내부 감찰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발생했다. 정작 본질적 문제는 놔두고 실무자들만 닦달해서는 기강이 설 리 없다.
 
나중에 더 큰 화가 생기지 않도록 관련자들을 중징계하는 한편 제도적으로 권력 주변을 좀 더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관철해야 한다.
집무실 사진 유출 사고 때의 재발 방지 약속이 빈말이 된 것 역시 사후 처리를 대충 얼버무렸기 때문이다. 여야도 더는 시간을 지체하지 말고 특별감찰관 추천 문제에 조속히 합의하길 촉구한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