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나라 살림의 규모가 올해보다 5.2% 늘어난 639조 원으로 편성됐다. 정부는 30일 국무회의를 열어 이런 내용의 2023년도 예산안을 확정했다. 올해 본예산 607조 원보다는 32조 원 많지만, 추가경정예산안을 포함한 총지출 679조 원보다는 40조 원 적은 수준이다. 본 예산이 전년도 총지출보다 감소한 것은 2010년 이후 13년 만에 처음이다.    정부는 예산 긴축에도 역대 최대인 24조 원 규모의 지출 구조조정을 통해 서민·사회적 약자 보호 확대, 민간 주도 경제를 뒷받침하는 미래 투자, 국민 안전과 글로벌 중추 국가 역할 강화 등 3개 부문에 재원을 집중할 방침이다.    내년 기준 중위소득을 2015년 도입 이후 최대폭인 5.47% 인상해 기초생활보장 지원을 2조4천억 원 늘리는 등 사회복지 분야의 지출은 전체 평균보다 높은 5.6% 증가한다. 미래 투자와 관련해서는 반도체 전문 인력양성, 연구·개발, 인프라 구축에 총 1조 원을 투자하고 원자력 생태계 복원도 지원한다. 홍수 대비를 위해 대심도 빗물 저류 터널 3곳을 신설하는 등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한 예산도 늘렸다.    공적개발원조(ODA) 예산을 올해 3조9천억 원에서 4조5천억 원으로 대폭 상향한 것도 눈에 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 취임식에서 강조한 '국제사회에서의 책임과 역할'을 예산에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재정 적자가 눈덩이처럼 커져 예산 증가를 최대한 억제했다고 설명했으나 이 정도로 충분한지는 의문이다. 경제에 먹구름이 몰려오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재정 지출을 줄이는 것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코로나 사태 등의 영향으로 문재인 정부 5년 동안에는 나랏빚이 매년 거의 100조 원씩 늘어났다.    정부가 이날 예측한 내년 관리재정수지 적자 58조2천억 원도 작다고는 볼 수 없다. 지금은 급속히 나빠진 재정 건전성을 회복시켜야 할 시기이다. 나랏빚 증가 폭이 4년 만에 100조 원 아래로 내려갔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다. 본 예산을 기준으로 한 총지출 증가율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연평균 5∼6%였고, 문재인 정부 때는 8.7%였으니 내년 증가율 5.2%는 코로나 사태 이전의 평상을 회복한 정도이다.    재정 정책이 긴축 쪽으로 방향을 틀면 중장기적 발전을 위한 투자가 준다거나, 경기 활성화를 위한 정부의 역할이 제한되는 등의 부작용도 있지만 가장 큰 걱정은 취약층 지원이 약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정부가 지출 구조조정을 통해 확보한 재원을 서민·사회적 약자 보호에 집중하기로 한 것은 잘한 일이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가난한 사람들의 삶은 더욱 팍팍해진다. 경제적 양극화를 넘어 심각한 정치·사회적 갈등이 증폭할 가능성도 있다. 충분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희망의 끈을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 배려하는 예산 정책을 펴야 한다.  전체 지출은 억제하면서 복지 지출을 늘리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만 정성껏 지혜를 짜내면 불가능하지도 않을 것이다. 올해 사회복지 예산이 무려 195조 원에 이르는데도 최근 수원 세 모녀나 보육원 출신 청년 두 명의 허망한 죽음은 막지 못했다. 안타까운 비극이 더는 되풀이하지 않도록 재원이 적재적소에 배분되고 있는지도 수혜 대상자의 눈높이에서 철저히 점검할 필요가 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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