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에게서 인사청탁 명목으로 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한명숙 전 장관은 8일 "검찰의 공소사실은 사실이 아니라 날조된 것"이라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한 전 장관은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형두) 심리로 열린 첫 공판에서 모두발언을 통해 "제가 살아온 삶과 양심을 돈과 바꿀 만큼 세상을 허투루 살아오지 않았다"며 이같이 밝혔다.
특히 "돈을 받아 챙기는 그런 일은 해본 적도, 할 줄도 모른다"며 "더구나 총리공관에서, 비서관과 경호관들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돈을 받는다는 것은 저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2006년 12월20일 총리공관 오찬은 (당시) 정세균 산자부 장관의 사의표명 후 지인들끼리 가진 송년회 성격의 조촐한 점심식사 자리였다"며 "퇴임하는 장관에게 인사청탁이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또한 "(한 전 총리에게 뇌물을 준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과) 정세균 장관의 만남을 주선하기 위해 오찬자리를 마련했다는 검찰의 사건구성 설정 자체가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국무총리의 자세가 흐트러지면 공무원의 기강도 무너지고 나라의 질서도 어지러워진다"며 "저는 이런 막중한 책임감과 중압감 속에 항상 자기관리를 철저히 해왔다"고 덧붙였다.
한 전 총리는 법정에 출석하기에 앞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살아온 인생을 걸고 법정에서 진실을 밝히겠다"며 "성실한 자세로 (재판에 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한 전 총리는 이 사건을 마치 의도적인 표적수사로 몰아가고 있다"며 "우연히 한 전 총리에 대한 진술이 나와서 수사 시작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진술과 정황이 정확하지 않았다면 애초에 수사 착수하지 않으려 했다"며 "이 사건은 표적수사가 아니라 단순히 공기업 취임과 관련된 뇌물수수 사건"이라고 못박았다.
아울러 "언론에서는 '(검찰-곽영욱 전 사장간) 빅딜'이란 이야기도 나왔는데 그 말 조차 사실무근"이라며 "재판 진행되면서 전모가 밝혀질 거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빅딜 의혹은 '검찰이 곽 전 사장의 재산 형성 과정의 불법 의혹을 문제 삼지 않는 대가로 한 전 총리에게 청탁 명목으로 뇌물을 건넸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다.
이날 공판에서도 이를 둘러싼 공방은 계속됐다. 한 전 총리의 변호인단은 진실을 밝히겠다며 곽 전 사장의 횡령 의혹에 대한 내사종결 자료와 참고인 조사 영상녹화물의 공개를 요구했다.
이에 "내사종결 서류는 검찰의 방침상 공개한 적이 없다"며 "재판부에게만 공개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영상녹화물의 경우도 열람만 가능하다고 못박았다.
하지만 재판부는 "(내사종결 서류를) 변호인이 보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며 "'빅딜 의혹이 있다'고 주장하는 부분을 빼도 공소유지가 된다면 공개하지 않아도 되지만 명료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 전 총리는 2006년 12월20일 서울 삼청동 총리 공관에서 곽 전 사장 등과 오찬을 가진 뒤 인사청탁 명목으로 2만달러와 3만달러가 각각 담긴 편지봉투 2장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과 한 전 총리 측은 동일인물 2명을 포함해 한 전 총리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를 받고 있는 곽 전 사장 등 31명을 증인으로 신청, 뇌물수수 의혹을 둘러싼 날선 법정 공방을 예고했다.
11일 열리는 2차 공판에는 핵심 인물인 곽 전 사장이 증인으로 출석하고, 이후 강동석 전 건설교통부 장관(15일), 이국동 전 대한통운 사장(19일), 정세균 민주당 대표(26일) 등이 잇따라 법정에 선다.
22일 오후 2시에는 뇌물을 주고 받은 장소로 알려진 총리공관에 대한 첫 현장검증도 진행될 예정으로, 이 사건 심리는 내달 9일 이르면 이달 26일께 끝날 전망이다.
한편 서울시장 출마가 거의 기정사실화되어 가고 있는 상황에서 열리는 이번 공판의 결과는 한 전 총리의 정치생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