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감포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해국이 피어있다. 감포는 지금 만개한 연보랏빛 해국이 지천이다. 지난 17일 감포깍지길 중 가장 인기있는 ‘감포해국길’을 찾았다.
감포깍지길 여덟 구간 중 감포항과 마을길로 이어지는 ‘고샅(골목)으로 접어드는 길’인 해국길(4구간)은 감포 포구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해서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과거의 향수를 남기는 곳이다
 
최근 1~2년전부터는 이곳 해국길 몇몇 적산건물들에 공간재생이 이뤄져 복합문화공간을 선보이고 있는 첫 사례가 되고 있는 길이기도 하다.
 
해국길은 감포항구 맞은편 활어위판장에서 출발하고 5일장이 서는 감포안길 감포상설시장과 바로 인접해 있는 골목으로 100여 년 전 일본인들이 살았던 크고 작은 적산가옥과 그들이 운영했던 술집과 여관, 목욕탕, 감포제일교회, 젓갈창고 등이 남아있다.
 
활어위판장에서 도로 건너 이어지는 골목은 일제강점기 ‘감포의 명동’으로 불릴 만큼 북적였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모여 살면서 자연스럽게 일본식 주택이 들어섰고 일본식 주택과 한옥, 서민형 주택 등 다양한 양식의 집들이 어울려 독특한 골목 풍경을 연출해 볼거리가 풍성하다.
 
허름했던 좁은 골목들 사이의 담벼락과 전신주에 그려진 해국 벽화로도 유명한 해국길은 지난해 7월, 감포읍에서 벽화를 새 단장해 해국길 특유의 골목길 정서를 다시 다듬었다.
  사라지고 있는 골목의 원형이 될 만한 공간인 해국길은 일제강점기 삶의 흔적이 남아있는 골목으로 작은 공간을 오밀조밀하게 나누어 사용하는 지혜가 있어 미학적 풍경으로 다가온다. 어수선하지만 정겨운.
 
해국길은 깍지길 중에서도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다. 특히 감포제일교회를 중심으로 좁은 골목벽에 그려진 해국은 이곳을 찾는 이들을 아기자기한 동심의 세계로 이끈다. 이 동네 언덕배기의 감포제일교회 계단 아래에 그려진 ‘세상에서 가장 큰’ 해국은 인기 포토존으로 일년 내내 핫하다.
 
감포시장과 인접한 해국길 입구에는 경주시가 감포의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공간으로 ‘감포문화갤러리’ 조성사업을 위해 매입한 적산가옥이 있다. 2019년 명품어촌테마마을 조성 사업 국비지원 공모사업에 선정된 이 가옥에 대한 주민들의 기대감이 컸다.
  감포시장 입구에서 당구장을 운영하는 주인 김정출(62)씨는 해국길 골목에 십수 년째 옛 일본 가옥 한 채를 따로 세 얻어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김 씨의 안내로 집 안을 구경할 수 있었다.
 
원래는 흙으로 지어진 일본식 겹집이었는데 리모델링 한 내부는 생각보다 훨씬 깨끗했다. 그는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곰팡이가 피거나 눅눅해지는 게 없다. 흙집이어서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하다”고 했다.
 
한편, 해국길 끝자락에 있는 아담한 집 담벼락에는 흩날리는 해국이 유난히 큼지막하고 화사했다. 집 앞에 놓인 벤치에 앉아 가을 햇살을 즐기는 주인 할머니는 아흔을 바라본다고 했다. 할머니는 사진 찍자고 하니 성가시다고 하면서도 가만히 피사체가 돼준다.
  집 앞 벤치는 할머니가 직접 구입한 것으로 20여 년째 이 집을 지키며 가고 오는 이들의 쉼터가 되고 있다고 했다. 
 
할머니는 “감포 대농가에서 태어나 ‘선창’으로 시집왔는데 결혼한 지 1년 지나 이 집을 샀고 줄곧 이 집에서 70년째 살고 있지. 집 맞은편 저 큰 소나무도 이사 올 때는 작은 묘목이었던 것이 ‘이마이 늙었다’”고 했다.
  이 집 역시 적산가옥으로 겹집이었는데, 새로 단장한 해국 벽화로 최근 해국길의 새로운 포토존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한편, 감포안길 해국길의 제일 좁은 골목(감포제일교회~감포시장)의 폭은 겨우 1미터 남짓이다. 감포에서도 이 길은 보기 드문 길이다. 비라도 올라치면 우산도 둘이 나란히 쓰고 다니지 못한다. 예전에 살던 사람들은 거의 이사를 갔고 지금은 세입자들이 많이 살고 있다.
 
이 골목 대부분 집의 창들은 동쪽을 향해 나 있다. 집들 앞쪽으로는 높은 집이 없어 바다가 환하게 보였다고 하지만 지금은 작은 집들 바로 맞은편으로 큰 건물이 지어졌다. 다닥다닥 연이어있는 작은 집들은 이제 햇살이 잘 들어오지 않는 환경으로 변해버렸다.
 
동네 주민은 “무화과 나무가 있는 집이 몇 있었는데 그걸 따 먹으려고 어린시절 그 골목을 많이 다녔지. 지금은 골목을 그렇게 다닐애가 없지”한다. 그랬던 골목에 사람들이 찾아오고 북적거리니 ‘사람 사는 맛이 난다’고 했다.
 
감포안길 해국길 중간쯤, 감포읍내 멀리서도 한눈에 보이는 굴뚝을 가진 일제강점기 목욕탕(신천탕)은 감포 지역 최초의 목욕탕이자 유일한 목욕탕이었다고 한다. 
 
다 쓰러져가는 지붕 아래 30년 동안 시간이 멈춘 채 박제돼있던 목욕탕이 지난해, 공간재생으로 새롭게 변신해 복합문화공간 ‘1925 감포’로 거듭났다.
 
이 목욕탕 바로 옆집에는 콘크리트로 견고하게 지어진 창고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80여 년 전 건축물로 추정되는 이 건물은 마치 철옹성 같이 단단하고 완강해 보인다. 
 
창고는 일제강점기 정치망 어선과 저인망 어선 등을 소유하면서 대규모 사업을 하던 ‘주조’라는 부유한 일본인 사업가가 별장으로 사용하던 집 아래에 지어져 있다. 
 
서늘한 1층 공간에 과일이나 생선, 가공된 통조림 등을 보관하는 창고로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이 창고는 감포 까만돌인 ‘오석돌’을 지게에 지고 와서 지었다고 한다. 
 
유사시 방공호로 사용할만큼 튼튼하게 지어졌다고 하는데다, 마당 한 귀퉁이에서 창고로 바로 내려가는 공간이 있다고 하니 제법 이야깃거리가 풍성한 집인듯하다. 일명 석빙고라 불리고 있다는 이 창고는 최근 전시장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다소 가파른 계단을 따라 언덕배기에 올라서면 이윽고, 감포제일교회의 해묵은 종탑이 나타난다. 해국 그림이 오래된 콘크리트 계단에 꽃처럼 피어있는 교회로 오르는 계단 왼쪽으로는 감포 해국이 무리지어 피어있다.
 
‘해국길에 해국이 없어서야’하는 의견들이 모여져, 감포깍지길 운영위원회와 감포읍사무소에서는 2012년부터 거마장 등 감포 바닷가에 자생하던 해국을 포기를 나눠 옮겨 이곳에 심었다고 한다.
  이곳 감포제일교회는 우리 민족이 아픈 시간을 거쳐 온 이야기도 숨어 있다. ‘경주시 감포읍 적산가옥’에서는 ‘고향을 떠나온 일본인들이 향수를 달래기 위해 신사와 사찰을 지었다. 일제강점기에는 교회 주변에 일본 신사와 고야산 진언종 사찰이 있었다’고 한다.
 
감포제일교회 포토존 계단 바로 옆에는 또 다른 해국길 명소가 있다. 사진가 최선호씨가 꾸리는 카페 ‘아르볼(Arbol)’로, 경주에서 가장 작고 낮은 카페다. 이 작은 공간에서의 햇살 한 줌, 작은 창으로 들어오는 미풍 한 자락은 우리에게 ‘작은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워주기에 충분하다.
 
월성원자력홍보관에서 해국길로 가는 방법은 바닷길을 끼고 북으로 달리면 된다. 15㎞ 북쪽으로 15분이면 닿는다. 가는 길에는 문무대왕수중릉과 나정 고운모래해변 등 아름다운 동경주의 해안을 맘껏 누릴 수 있다. 해국길에 접어들기 위해 감포읍으로 다가가면 초입에 있는 감포시장도 전형적인 시골 전통시장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