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신문이 영남지역에서 왕성한 예술활동을 하고 있는 중견 작가들을 만나보고 있다.이번에는 종교가 먼저냐, 예술이 먼저냐를 논하기 전에 무엇이든 나에게 없는 것은 남에게 줄 수 없는 만큼 학문도, 기도도, 봉사활동과 예술활동도 어느 하나도 게을리할 수는 없다며 모든 일에 기도와 열정으로 인생을 설계하고 있는 해선 스님 작가를 만났다.스님은 땡중(?)이라 불리기에는 너무나 많은 재능을 가지고, 기부하고 있어 사회를 밝게 하고 있다. 출중이라 함이 좋겠다. 내가 편해야 모든 사람이 편하듯이 자신을 위해 열정을 쏟아 붓고 있기 때문이다. ◆ 출가 이후에도 화가의 꿈 내려놓지 못해 쉰동이 외동 아들로 태어난 해선 스님은 6.25 한국전쟁 전부터 언론사 출신이셨던 부친이 섬유산업을 선도하며 대구에 직물공예연구소를 운영하던 가정에서 태어났다.이런 연유로 많은 예술인들과의 만남이 자유로운 상황에서 그들을 지원하는데 노력하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당대 최고의 화가들에게 유년시절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초등학교 때는 학교의 대표로 많은 사생대회에 참가해 수회에 걸쳐 수상한 적이 있다. 하지만 부친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가세는 기울고, 그림에 대한 꿈은 내려 놓을 수 밖에 없었다.그러나 고교시절 우연히 선생님의 추천으로 참가했던 달구벌미술대회에 참가했다. 체육특기생이었기에 대회에서 입상을 해 그림을 향한 꿈을 다시 시작, 대학을 디자인과로 지원해 다니던 중 뜻한 바 있어 출가해 승려의 길을 가게 됐다.하지만 그림을 향한 열정은 불화로 이어졌으며, 그 또한 스스로의 꿈을 실현하기에는 만족하지 못하고 지내다가 꿈속에 슬피우는 호랑이를 만난 후로 십여년간 호랑이만을 그렸다.비로소 2018년 개인전을 열게 돼 제도권 진입을 향한 발걸음을 시작하게 됐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주위의 좋은 분들께서 많은 지도편달과 자원을 아끼지 않아 3년만에 국전 정회원의 자격을 부여받았으며 4년만에 초대작가의 명예를 인정받았다. ◆ 밤 10시부터 새벽 3시까지 작업에 열중   종교인으로서의 일과가 만만치 않은 여건에서 마음속에 웅크리고 있던 그림을 향한 열정을 쏟아 붓기에는 마치 시간과의 전쟁을 방불케 한다.각종 장애로 인해 미쳐 끝내지 못했던 학업에 전념하며, 소외계층을 향한 지원사업과 문화예술의 후원, 장애인단체의 교육과 포교활동, 불교대학운영 등의 활동을 하노라면 수면시간을 내려 놓아야만 가능한 일정으로 밤 10시부터 새벽 3시까지만 그림을 그릴 시간이 허락되는 삶이었다.하지만 어떤 시간보다 스님을 행복하게 하는 시간인지라 십수년 달려왔으며, 그 결과 경북대대학원 석사, 각종 문화단체와 장애인단체의 이사진으로 역할을 맡게 됐다.해선 스님은 "개인전과 초대전까지 발표하게 됐으나 아직은 부족한 실력이기에 다소 염치가 없다고 느끼고 두려움을 느낀다"고 겸손해 했다. ◆ 종교인으로 바라본 예술은   문학이든 미술이나 모든 학문을 자취나 흔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해선 스님은 "예술은 자신의 삶 속에 활용된 시간의 흔적"이라고 생각을 한다. 또 삶의 흔적 일부가 회화로 남아 함께 공존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부처님도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라고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주셨다. '어느 곳, 어느 처지에 다다르더라도 주관을 잃지 않고 자신의 주인이 되라'는 뜻이다. 그 뜻을 따라서 학교에서는 학생으로, 절에서는 스님 노릇 제대로 하며 아뜨리아에 머무는 시간 만큼은 그림이라는 흔적으로 시간을 활용하기에 언제나 행복이 충만한 삶을 살고 있다고 했다.해선 스님은 "무엇이든 나에게 없는 것은 남에게 줄 수 없으니 학문도, 기도도, 봉사활동과 예술활동도 어느 하나도 게을리할 수 없었다"며 "관세음보살님의 삼십이응신이란 32가지 모습으로 부족한 이의 어려움과 두려움을 해결해 주심을 말하고 있다. 모름지기 불가에 입문해 삭발염의를 했다면 그와 같이 되기 위한 노력은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말했다.한 시도 허비해서는 ‘불기자심(不欺自心)’, 스스로를 기만하는 행위가 되지 않겠냐는 것이다.◆ 내년 시각 장애인 위한 기획전 준비   해선스님은 내년에 기획전을 준비하고 있다. 또 다른 도전이다.그간 그림전시회를 해 오면서 아쉬웠던 점 중에 가장 아쉬웠던 점이 시각장애인들의 미술전시회관람였다고 한다. 쉬운 도전은 결코 아니었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대구대학교 점자박물관’의 도움으로 조금이나마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해선 스님은 "한때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어린시절 섬유가공업체에서 근무를 하던 중 가성소다(양잿물) 원액을 뒤집어쓰고 두 눈이 실명의 위기에 이르렀던 적이 있었다"며 "엄청난 통증이 수반되는 수개월 후에 기적적으로 각막이 회복돼 시력이 더 나아졌지만 그 기간 참으로 암울했던 순간을 결코 잊을 수 없다"고 밝혔다.해선 스님은 ‘암흑천지’가 현실이 됐던 그 시절을 더듬어 시를 적었고, 그 시를 점자로 바꾸어 시집을 엮어보려니 순백의 시집을 장식하려면 그림이 필요해 졌다고 했다. 내년 기획전을 위해 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이 함께 그림을 감상할 순간을 염원하며 한점, 한점 작품들을 쌓아가고 있다. ◆ 출가 후 기른 수염 오늘까지 자라   해선 스님은 대학 1학년 재학 중 출가했다. 개신교도로 살았지만 풀리지 않는 삶에 대한 해답을 찾다가 불가에 입문했다. 25년 전 성주 문수사에서 외부 출입을 하지 않고 홀로 수행하다보니 그냥 자랐던 수염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해선 스님은 한 방송사 다큐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된 후 지금까지 수염을 기르게 됐으며, 어른 스님의 허락도 있어 이제는 자연스럽게 관리하고 있다고 했다. 서예라는 예술의 장르가 있고 ‘캘로그라피’가 예술로 승화됐듯이 ‘점자’도 하나의 문자임에는 틀림없다. 해선 스님은 그에 착안해 섬세하고 아름다운 점자를 예술로 승화한 ‘점자시화전’과 눈 감고 손끝으로 그림을 체험하고 감상하는 작품을 선보이겠다는 계획을 하고 있다.   ◆ 해선 스님의 이력과 활동상   대구 출신으로 영남고와 경북대학교 대학원 석사 과정을 마쳤다. 달구벌미술대전 입상, 대구지하철화재 위령재 무예춤 퍼포먼스, 광주 일월산과 안동예술제 초대전 및 무예춤 퍼포먼스, 국회의원 초대전 등 다양한 장소에서 많은 개인전과 초대전을 했다.한국미술대전 특선, 한국미술대전 의장상 수상, 미술대전 초대 작가, 정부대구청사 호랑이연합전과 200회 이상의 각종 행사 시 타묵퍼포먼스를 펼쳤다.현재는 국제환경문화연합회 총재, 국제환경문화봉사단 단장, 한국미술협회 초대 작가, 예림갤러리 대표, 성주 보림사와 대구 충효사를 운영하는 등 예술인과 종교인으로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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