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한명숙 재판 불공정했다"
뇌물수수 혐의로 재판을 받던 한명숙 전 총리가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두 번째 '혈투'가 불가피해졌다. 검찰이 법원의 판결에 불복 항소의 뜻을 밝힌데다 불법정치자금 수수의혹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어 '장기전'도 예상된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김기동)는 한 전 총리가 H건설시행사 한모 대표로부터 10억여원을 전달하는 과정에 핵심적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한 전 총리의 최측근 김모씨(여)를 금명간 소환조사할 것으로 11일 알려졌다.
검찰은 김씨가 한 전 총리 재임 시절 내실에서 근무할 정도로 친분이 두터운 점 등을 근거로, 한 대표가 한 전 총리에게 불법정치자금을 전달하는 과정에 김씨가 깊숙히 개입했을 것으로 파악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김씨가 검찰 소환조사에 응할 경우 불법정치자금이 전달될 무렵 한 전 총리 사무실 운영상황과 자금관리상태 등 구체적 정황을 파악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H사 채권단은 2008년 회사 부도 이후 발견한 '2007년 10월자 7억여원의 가지급금'이 한 전 총리와 연관성이 있을 것이라 추정하던 중, 한 전 총리 재판이 본격화되자 이 사실을 검찰에 알렸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검찰은 사기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한 대표를 검찰청으로 불러 조사를 진행했고, 한 대표로부터 불법정치자금을 전달한 구체적 날짜와 액수, 빈도 등에 대한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표와 회사 관계자들은 한 전 총리에게 2007년 1월부터 현금 3억원, 10여만 달러가 포함된 3억원, 현금 2억원, 10만 달러 등 모두 4차례에 걸쳐 돈을 건넸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검찰은 한 대표 등으로부터 "2008년 3월 회사가 부도나면서 한 전 총리가 2억원을 되돌려 줬다"는 진술도 확보, 불법정치자금 전달시점과 회사 계좌에서 돈이 인출된 시점, 달러 환전 시점 등이 일치하는지 여부도 조사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한 대표와 한 전 총리가 종친회 등의 모임을 통해 친분을 쌓아오고 한 대표 사업이 한 전 총리의 정치적 기반인 경기 고양에서 진행된 점, 한 전 총리가 경선에 나선 시기 전후로 정치자금이 전달됐다는 진술이 나온 점 등을 근거로 혐의입증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검찰은 현재 H사와 K자회사, 회계법인 등을 압수수색해 확보한 자료를 집중적으로 분석하면서 K자회사 김모 대표 등 시행사 및 자회사 관계자를 차례로 불러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다.
검찰은 관련 수사를 신속히 진행해 증거자료를 확보한 뒤 한 전 총리를 재소환 조사한 뒤 추가기소할 방침이다.
하지만 한 전 총리가 검찰의 소환조사에 응할 가능성이 낮아 검찰과 한 전 총리 측의 신경전이 다시 한번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검찰의 자신있는 행보와 관련, 뇌물수수 혐의 수사와 달리 이번에는 검찰이 분명한 증거들을 확보한 뒤 움직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검찰 출신의 모 법조계 인사는 "검찰이 한 전 총리 급의 거물에 대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수사할 경우 축적한 범죄정보들을 충분히 분석하고 판단한 뒤 시작한다"며 "사건 발생시점이 2008년인 점을 고려하면 검찰이 수사 성공 가능성을 높다고 자체적으로 판단해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한차례 혹독한 패배를 경험한 검찰은 6월 지방선거 전에 수사를 마무리해 사건이 정치쟁점화되는 것을 막을 방침이다.
검찰 관계자는 "범죄 혐의가 있다면 검찰은 당연히 수사를 해야한다"며 "수사 외적인 부분에 영향을 덜 받기 위해 (최대한 빨리) 수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한 전 총리를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한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검사 권오성)는 지난 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형두)의 무죄판결에 불복, 즉각 항소키로 했다.
수사를 지휘한 서울중앙지검 김주현 3차장 검사는 "곽 전 사장이 5만달러를 줬다는 진술 자체는 검찰조사과정과 공개된 법정에서 모두 일관됐다"며 "재판부의 판단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비난했다.
이에 따라 검찰은 이달 16일 이전에 항소장을 법원에 제출할 것으로 보인다. 항소 절차는 판결선고일로부터 일주일 안에 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항소장이 접수되면 1심에서의 기록이 정리돼 넘어와 사건 번호가 부여된다. 그러나 기록분량이 많으면 기록송부가 지연될 수 있다.
고등법원은 지연을 막기 위해 특별한 일이 없으면 항소장을 제출한 날부터 이주일 안에 기록을 송부해야 한다는 내부규정을 두고 있어 한 전 총리의 1심 기록 송부는 늦어도 4월말이면 끝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이 끝나면 사건은 부패전담재판부인 고법 형사1부나 4부에 배당될 것으로 보이며, 항소심에서 어떤 판결이 내려지더라도 검찰이나 한 전 총리측 어느 한쪽은 상고할 것으로 보여 장기전이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