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거취 문제로 연말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민주당이 이 장관의 해임건의안 제출을 공식화하고, 여권이 국정조사 보이콧 가능성을 시사하고 나서면서 내년 예산안의 법정시한(12월2일) 내 처리마저 불투명해진 것이다.
민주당은 이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안 발의까지 검토하고 나섰다. 법적 구속력이 없는 해임건의안과 달리 장관 탄핵안은 국회 의결시 헌법재판소의 심판이 있을 때까지 직무 정지 효력이 발생한다. 두 안건 모두 재적의원 과반 찬성으로 통과되기 때문에 민주당 단독으로도 처리가 가능하다. 민주당은 해임건의의 명분으로 이태원 참사 책임을 회피하고 진상을 축소, 은폐하려는 이 장관의 태도와 희생자 유가족의 요구, 국민 여론 등을 들었다.
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는 29일 이 장관 파면을 "국가적 대형 참사를 제대로 수습하기 위한 출발점이자 가늠자"라고 규정했다. 이에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예산안 법정 예산처리 기한을 지키지 않겠다는 선포"라며 "국정조사를 정쟁에만 활용하고 정권이 일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10·29 이태원 참사 발생 직후부터 국정조사를 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티격태격 싸우던 여야 정치권의 시곗바늘이 거꾸로 돌아가는 형국이다. 여야는 지난 23일 '예산안 처리 후 국정조사 실시'에 뜻을 모았으나 합의문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없던 일이 되는 듯한 모양새다.
설상가상으로 예산안 처리 시한이 도래했다. 예산안이 제때 통과되지 못하면 민생에 큰 타격을 미친다. 나라 경제가 중대 위기에 놓인 상황에서 여야가 극한 대립을 거듭하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이 장관을 경질하라는 야당의 요구는 관례에 비춰보면 당연한 수순이다. 과거 성수대교 붕괴와 세월호 침몰 같은 대형 재난 사고가 터질 때마다 관계 기관장은 가장 먼저 자리를 내놓고 당국의 조사에 응했다. 사고 책임의 유무를 떠나 조직 총괄 관리자로서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퇴한 것이었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민주당의 요구는 호응을 얻기 어려워 보인다. '야권 단독 국조' 카드로 여권을 압박해 국조 실시를 끌어낸 것은 다름 아닌 민주당이었기 때문이다. 이 장관 파면이 민주당의 원래 요구였다고 하지만, 국조 계획서까지 채택된 이제 와서 그런 요구를 바로 다시 하는 것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또 이 장관이 물러나 자연인 신분에서 국조 출석에 불응한다면 민주당은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나.
야당의 해임건의안 제출은 여권과의 극한 대립과 정국 파행을 각오하고 하는 일일 것이다. 또 야당이 정부 예산안을 정부 의견을 무시하고 단독처리하겠다는 것은 국민 눈에는 오만하게 비칠 뿐이다. 민주당은 해임건의안 제출을 유보하고 국민의힘과 머리를 맞대 타협점을 도출하기 바란다. 국조 실시와는 별개로 예산안 처리 합의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예산안 심사와 시한 내 처리는 헌법에서 규정된 국회의 의무다. 그것이 경제위기로 고통받는 국민에 대한 도리일 것이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