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신문이 영남에서 예술활동을 하고 있는 중견 작가들을 만나고 있다. 작가들의 성향이나 작품성은 물론 어린 시절, 향후 그들의 활동 영역을 살펴본다.이번에는 독특한 포즈의 인물을 그리고 있는 김하균 작가를 만나 본다. 김 작가가 그리는 것은 ‘인체’가 아닌 ‘인간’이다. 이에 경북신문은 인간의 본질을 보고, 그리고 있는 김하균 작가의 인간을 살펴본다.   ◆ 작가의 어린 시절은?   일반적인 도덕률로 따지면 어른들의 말씀 잘 듣고 공부 잘하면 모범인으로 생각하는 어린 시절이 누구나 있었지만, 작가도 예외는 아니었다.그것은 나의 능력이 부족하고 낙천적인 인성 때문인지 그들의 만족을 채워 드릴수는 없었다. 그럴 때 마다 항상 생각한게 ‘반항’이었다. 결국 어른들에게 반항하다가 실컷 두드려 맞고 힘겹게 스스로를 ‘절망’하는 학창시절을 보냈다.그러다보니 당시 작가는 남들과 다르게 살아가는 어떤 의미가 되고 싶었다. 매일 끝없이 반복되는 생활에 순응되지 말고 스스로 혼자만의 세계를 찾고 싶었고 그 당시의 정직함과 순수함은 뜨거운 열정으로 가득찼다.그 당시 정직함과 순수함, 열정의 밀알이 오늘을 만들게 했다.   ◆ 예술을 접하게 된 동기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과 입시시험에 매달리게 하는 시스템 속에서 그나마 스스로 나를 찾아보고 생각해보는 소중한 기억을 잊을 수 없다.또 고등학교 내 생활기록부는 엉망이었지만 남들과 다르게 한번 더 나를 생각해볼 수 있었고 그 속에서 의식은 점점 구체적으로 단단해져 가고 있었다. 그것이 미술을 접하게 되어 예술의 세계를 날 게 됐다.미술대학에서의 나의 일상은 평범했었지만 그림 그리는 시간만큼은 물 만난 고기처럼 신나게 나만의 분위기를 표현해 낼 수 있었다. 평소 남들과는 다르게 관찰하려는 의식이 기본 베이스를 깔고 있지만 기존의 관습을 거부하려는 아집은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걸 유심히 관찰하고 이해해 주신 분이 담당 교수님이셨고, 타 과목과는 달리 전공 실기만큼은 자신감을 갖고 그림을 계속 그려온 것 같다. 그것이 오늘날까지 그림을 계속 그려온게 40년이 넘은 세월, 나의 인생, 예술 그 자체이다. ◆ 작가의 작품 성향은 인간의 흥을 다룬 것으로 보이는데, 우리 국민은 한이 많다고 하자나요. 대조를 이루는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작가는 한국적인 미에서 흥과 한은 같은 것으로 반대의 개념이 아니라 동일시의 개념으로 생각한다.한국의 미는 ‘해학의 미’라는 말이 있습니다. 미학에서 해학이라는 용어는 ‘익살스럽고 우스꽝스러운 웃음을 유발하는 풍자’라는 말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보면 판소리를 통해 한(恨)을 해학적으로 슬픔을 웃음으로 정화시켜 풀어 내고 있지요.오히려 한(恨)스런 내용 등을 풍자(諷刺)시켜 통해 서민들의 마음을 풀어주는 민요 등이 있지요.'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이 나고~' 지금 같으면 칼부림까지 날 수 있는 상황이지만, 민요속에 정서는 한(恨)스런 마음을 노래로서 풀어낼 뿐입니다.그림 속에 해학적인 미는 외국인이 해석할 수 없는 수천년 동안 한국인들 가슴속에 흐르는 우리만이 느낄 수 있는 미(美)가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중년의 군상들, 단단히 통제되어가는 법과 도덕 윤리에서 술 한잔에 흥에 겨워 춤을 추면 미친놈 소리 듣기 십상입니다. 김 작가는 사람을 그린다. 일종의 인물화인 셈이다. 흥에 겨운 사람풍경을 형성한 사람들이 캔버스를 가득 채운다. 마이크를 잡고 입을 크게 벌린 사람, 섹소폰을 연주하는 사람, 첼로를 연주하는, 춤을 추는 사람들이 즐비한다.감정에 충실한 이 사람들의 공통점은 저마다 흥에 겨운 모습을 하고 있다. ◆ 특별히 작성 표현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개인전을 준비하면서 해왔던 작업은 ‘인간의 본질’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대상은 유명연예인이 아니라 힘들게 살아가는 평범한 이웃들이다. 노래 춤을 실제 실행하면 이성과 도덕을 벗어난 또 다른 환희의 세계가 있다. 그것을 통해 사회의 룰에 벗어난 인간 본래의 모습으로 스스로 자유스러워지고 자신의 자아를 찾는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직설적이고 단순하다. 심하게 잔소리하는 여성의 모습도 우스쾅스럽지만, 그림이 직설적이라 이해하기 쉽고 관람자들에게 임팩트하게 느끼게 해준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알려지고 보는 것이 전체가 아닌 그 안의 뭔가를 끄집어내고 만나는데 의미를 살아가는 것과 그림이 일치될 때 비로소 존재와 작업이 갖는 의미를 느끼고 흥분과 쾌감을 느낀다고 말할 수 있다. 김 작가는 스스로에게 ‘그림 작업은 스스로 캔바스에 마음껏 쏟아내는 잔소리이다’라고 말하고 싶다.저는 소심한 성격이라 시작 전에는 망설이고 주저하지만 한번 시작하게 되면 싫어하기나 말거나 마음껏 퍼부어 버립니다. 무당이 신기가 오르면 작두 위에 춤을 추듯이 캔바스 화면 위에서는 감성을 마구 흔들어 봅니다. 나중에는 어떻게 그렸는지도 모를 정도로 스스로를 잊어버립니다. 무아지경이지요, 아니 천국에서 나의 무한 날개 짓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 작가의 이력과 지금까지 활동 사항과 현재는? 김 작가는 의성 출신으로 영남대와 동 교육대학원 졸업 후 2001년 첫 개인전(봉산미술제 초대전)을 시작으로 우봉미술관, 대구문화 예술회관, 제주도 현갤러리 초대전, 일본 오사카 naw갤러리 2회, 대백프라자 갤러리로 현재까지 7회 개인전을 가지고 있으며 단체전은 1년에 15회~20회 정도하고 있다. 작가는 대구시 미술대전 운영위원 및 심사위원을 역임했으며, 2022년 신년 기획 초대전을 정부 대구지방 합동 청사 갤러리에서, 대구문화회관, 울산 환경미술 영남 교류전 등 단체전을 하기도 했다. 또 1997년부터 2021년까지 웃는 얼굴 아트 센터 달서 갤러리에서 함께 하는 선물전, 수성미협 전 창립시부터 현재까지, 영남한국회회 정기전, 광미회전을, 북경 아트페어(2004년), 상파울로 비엔날레 한국의 미 특별전, 한중 강소성 교류전 등 글로벌 전시회에도 두루 참가했다.현재는 한국미협 이사, 대구미협 이사, 대구시전 초대작가, 수성미협 한국화 분과위원장, 영남한국화회, 코메트회, 광미회 회장, 시선회 회장, 동질성 회복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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