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노력한 결과 현재 (주)씨포아이는 좋은 성장세로 커나가고 있습니다. 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저으란 말처럼, 기회가 주어졌을 때 더 많은 것을 이루어 나가고 싶습니다. 회사를 더욱 성장 시키고, 그로인해 함께 일하는 직원들과 더 많은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시골마을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사회진출 후 끈기와 성실, 도전정신으로 중소기업을 경영하며 입지를 굳힌 (주)씨포아이 김종원(41) 대표이사를 만났다.그는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부친(김형태·71)의 선한 영향력으로 지난해 이어 올해에도 누나 CM디자인 김도휘(42)대표와 함께 지난달 13일 기계면 행정복지센터를 방문해 저소득층 및 기계면의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사용해 달라며 많은 성금을 기탁했다.(주)씨포아이는 지난해 한국무역협회 수출의 탑 300만 달러 달성과 연매출 110억 실적을 올린 미래 성장성과 장래가 유망한 중소기업이다. 그는 현재 경산시 자인면에서 사업장을 경영하고 있다. ▶ (주)씨포아이는 어떤 회사인가? - 씨포아이(C4I)의 회사명은 Customizing For Implant의 줄임말로서, 고객 맞춤형 임플란트 수술도구를 생산하는 업체입니다. 고객사들이 원하는 것을 고객의 필요에 따라 맞춤형으로 설계부터 제조 포장까지 진행해드리는 OEM전문 기업입니다.▶ 어떻게 회사를 창립했나? - 직장생활의 경험을 토대로 기술을 습득하고, 함께할 사람을 모집했습니다. 다니던 회사에서 성실함과 남다른 실력을 인정받아 한 부분을 맡아 관리하던 중 사업계획을 수립했고, 사업성과 장래성이 유망한 지금의 씨포아이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 회사를 경영하면서 어려운 점은?   - 어려운 것이 사람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일에 대해서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사람마다 하는 일이 다르고, 각자의 능력에 따라 빠르거나 느리거나, 완벽하거나 불완전하거나의 개인 차이는 있지만 결국 일은 사람이 하는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람인데, 함께 믿고 같이 일 해나갈 동료를 찾는 것이 가장 어려운 점이었습니다. 최근 젊은 층은 일을 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고, 그 결과, 인력채용이 현재의 가장 큰 문제입니다. ▶ 회사를 경영하면서 보람된 일은?   - 이 역시 사람입니다. 한 해가 지나고 돌아보기를 벌써 6년, 지치기도 하고 힘들기도 했지만, 그때 마다 옆에서 함께 해 준 직원들이 있어 버텨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매년 뒤를 돌아보면 함께 하는 직원들이 늘어 있었습니다. 사업시작 첫해 혼자서 모든 것을 준비해 나갔지만, 1년 뒤 8명의 동료들이 저와 함께 하고 있었고, 그 숫자는 매년 조금씩 늘어 지금은 38명의 식구들이 저와 함께 발맞춰 걸어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저의 최대 보람입니다. ▶ 어려운 현실에 정부나 지자체에 바라는 것은?   -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는 곳입니다. 기업이 이윤을 추구하고 성장해 나가야, 정해진 법에 맞게 세금도 더 많이 낼 것이고, 고용도 창출해 낼 것입니다. 정부에서 기업육성에 도움을 줄수록 양질의 일자리가 더 많이 만들어질 것이고, 이는 사회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가장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난 정부는 기업 죽이기에만 급급한 것 같습니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 매년 고향을 위해 기부하는 목적은?   - 제 기억 속에 저의 아버지는 동네 홍반장이었습니다. 자고 일어나기 바쁘게 이웃이 저희 집을 찾아왔습니다. 누구 집에 보일러가 고장 났고, 누구 집에 수도가 터졌고, 어느 논에는 경운기가 빠지는 등. 그럴 때 마다 아버지는 남의 일이 아니라 내일처럼 나서서 해결해주시곤 했습니다. 물론 인건비 하나 제대로 못 받으셨고요, “이거 고치는데 부품이 뭐뭐 드갔니더, 그거마 주소~” 항상 이러셨던게 기억납니다. 한번은 그런 아버지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람 사는데 돈이 중요하지만 너무 돈만 따지면 안 된다. 아버지는 항상 "돈은 일을 하다보면 따라 오는 거지, 절대 돈을 쫓지 마라”고 하셨습니다. 처음엔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명확하게 말의 의미를 알고 있습니다. 그런 아버지를 보고 자라서 인지 저 역시도 그렇게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버지가 동네 이웃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주었던 것처럼, 저의 기부로 인해 누군가는 그와 비슷한 도움을 받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버지가 동네 홍반장이였다면, 저는 고향동네의 키다리 아저씨가 되고 싶습니다. ▶ 앞으로 계획은? - 사람은 그 누구보다 자기 자신이 자신 스스로를 제일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나쁜 짓을 했는지, 착한 일을 했는지, 게으름을 피웠는지, 부지런하게 살았는지...제가 죽어 관속에 들어가 누웠을 때, 그 누구도 아닌 제 몸에서 빠져나온 저의 영혼이 “종원아~, 너 일평생 정말 열심히 잘 살았다. 고생 많았으니 이제는 푹 쉬어라~”라고 말 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 “살아 있다면, 움직여라!”가 저의 좌우명입니다. 가만히 있어서 이뤄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저는 매년 함께 일할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사람을 구하기가 너무 힘이 듭니다. 특히 요즘 20대 30대 청년들이 일에 대한 열정이 너무 없는 것 같아 많이 아쉽습니다. 10년 전 저는 월급 156만 원을 받던 월급쟁이였습니다. 처음엔 친구들을 만나 술 한 잔 살 여유도 없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열심히 일하는 것 뿐 이였습니다. 시작부터 멋진 인생은 없고, 단기간에 이루어지는 것 또한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회사에서 인정받기까지 3년이 걸렸습니다. 3년이 지난 뒤에야 이름석자를 아는 사람이 늘어났고,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가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자리까지 오게 됐던 것 같습니다. 이제 곧 사회생활을 앞둔 청년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처음부터 멋진 직장 화려한 보수는 없다고, 노력해서 만들어 나아가는 것이고, 또 만들면 만들어 질 것이라고, 혼이 담긴 노력은 배신을 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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