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나경원 전 의원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직 사의 표명이 허공에 '붕' 뜬 모양새다.
 
나 전 의원이 지난 9일 사의를 표한 이후 대통령실에서는 벌써 사흘째 사실상 '무반응' 상태다.
 
김대기 비서실장은 나 전 의원이 사의를 표한 문자 메시지를 뒤늦게 확인하고 보고했지만, 윤 대통령은 수리 또는 반려 여부를 포함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의 이같은 분위기에 여러 가지 해석과 관측이 제기된다.
 
대통령실은 우선 나 전 의원이 사의를 표한 것은 맞지만, 실물 사직서가 제출된 것이 아닌 만큼 윤 대통령이 현 단계에서 '반려' 또는 '수리'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입장으로 알려졌다.
 
여권 관계자는 12일 통화에서 "(나 전 의원은) 장관급의 정무직 공직자"라며 "임명권자인 대통령에게 최종 결정권이 있으며, 또 의원면직 여부를 결정하려면 사직서 제출 등 최소한의 행정적 절차가 필요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나 전 의원 측에서 "비상임 위촉직의 경우 사의 전달로 불필요한 절차를 갈음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과는 간극이 있다.
 
정부 측은 대통령실 입장과 궤를 같이하는 모습이다.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이날 통화에서 "위원회 위촉직의 경우에도 본인의 사직 의사를 명확히 하기 위해 공무원에 준해 사직원서를 받고 있다"는 유권해석을 내놨다. 규정상 자필 사직원서를 제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통령실이 나 전 의원의 사의 자체를 부정하며 발을 묶어두려 한다는 시각도 있다. 국민의힘 당 대표 선거 최대 변수로 떠오른 나 전 의원이 당대표 선거에 출마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취지다.
 
나 전 의원은 최근까지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층 지지율에 선두를 달리고 있지만, 당내에서는 친윤(친윤석열)계 다수가 김기현 의원에게 힘을 싣고 있는 형국이다.
 
전반적인 구도를 볼 때, 나 전 의원이 출마할 경우 전통적 지지층을 기반으로 하는 표심이 겹치는 김 의원에게 영향이 가장 클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또 결선투표가 진행될 경우 나 전 의원의 출마는 비주류 주자로 분류되는 안철수 의원이나 나 전 의원처럼 아직 출마 여부를 고심하고 있는 유승민 전 의원 등에도 적지 않은 영향이 있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오는 14일 아랍에미리트(UAE)·스위스 순방길에 오르는 윤 대통령이 출국 전에 나 전 의원 사의의 건을 매듭짓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대통령실 입장에서는 사의 수용 또는 반려가 각각 전당대회 출마 여부에 시사하는 바가 다른 만큼, 결국 어느 쪽을 택하든 대통령실이 전당대회에 개입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시간 끌기' 전법을 취하기로 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나 전 의원 쪽에서도 내심 이를 통해 출구전략을 모색하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부위원장직을 내려 놓고 하루만에 공개 행사에 줄줄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출마로 결심을 굳힌 것이 아니겠냐는 해석이 한때 제기됐다.
 
그러나 나 전 의원은 거취와 관련해 기존의 모호한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전날 "절대 화합"을 강조했고, "대통령실과 충돌·갈등을 원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발신했다. 대통령실과 정면충돌하는 모양새를 피하기 위해 용산과 물밑으로 소통하며 거취를 정리하는 수순을 밟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나 전 의원은 아직 정식 사직서를 제출하지는 않은 상태로 알려졌다. 양측 소통에 정통한 여권 인사는 "피차 시간벌기인 셈"이라고 평했다.
 
이런 가운데 나 전 의원은 다시 '잠행 모드'로 돌입했다. 예정됐던 충북도당 신년인사회 등 일정도 취소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