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이상문 기자] 딸랏노이는 방콕에서 가장 오래된 지역 중 하나다. 이 마을은 1700년대 중국의 이민자들이 정착하면서 생겼다. 방콕의 중심부를 관통하는 차오프라야 강변에 위치해 있어 무역에 편리한 지정학적 장점으로 상업 중심지로 발전했다. 그러나 1970년대 방콕시가 확장되면서 이 마을에 거주하던 주민들은 인근의 야왈랏 거리로 이주하면서 서서히 퇴락하기 시작했다. 현재의 차이나타운이라고 불리는 야왈랏 거리는 딸랏노이를 거점으로 성장한 중국인들이 이주해 건설한 지역이다.
새로운 차이나타운이 건설되면서 딸랏노이는 슬럼화의 길을 걸었다. 오래된 건물들은 철거되고 역사적 흔적은 하나둘 인멸되기 시작했다. 자칫 중국인들이 방콕에 정착해 상권을 형성하고 방콕 경제의 중심으로 성장하던 역사적 현장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딸랏노이는 문화와 역사의 허브지역으로 새롭게 부활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유의미한 건물이 복원됐으며 공공미술을 통한 도시재생 사업이 이뤄지면서 지금은 방콕에서 반드시 방문해야 하는 중요한 관광지로 급부상했다.
딸랏노이라는 말은 ‘작은 시장’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딸랏노이 주변에는 태국의 전통적인 재래시장이 그대로 형성돼 있고 자동차 부품을 수리하거나 판매하는 영세소상공인들의 점포가 빼곡하게 모여 있다. 이 콘텐츠는 딸랏노이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세련되고 발전한 방콕의 문화가 아니라 도시가 생성된 초창기의 허름하고 토속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해 오히려 더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또 몇몇 식당들은 태국 음식을 조리해 관광객들의 허기를 채워주면서 소문난 맛집으로 소개되기도 한다.
딸랏노이에는 중요한 역사적 건축물이 현존한다. 마을 입구에 있는 거룩한 묵주교회(The Holy Rosary Church)는 방콕의 가장 오래된 로마 카톨릭 교회다. 1769년 포르투갈 가톨릭 신자들이 아유타야왕조가 함락된 후 이 지역에 정착하면서 지었다. 1838년에 낡고 손상된 구조물을 대체하기 위해 석조 기반 위에 나무로 된 새 교회 건물을 지어 현재에 이른다. 또 시암상업은행 딸랏노이지점도 중요한 역사적인 장소다. 이 은행은 시암상업은행의 첫 번째 상설 사무소다. 1900년대 초 이 마을의 중국인 상인들이 이용한 이 은행은 태국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 중 하나다.
이처럼 방콕 현대사에 중요한 포인트를 고스란히 간직한 딸랏노이는 도시재생을 통해 폐허로 치닫던 골목을 새롭게 살려내고 세계의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로 만들었다. 이 지역의 주민들은 힘들게 이어왔던 생업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그들의 삶속에 녹아든 언어와 음식, 그리고 민속신앙을 원형 그대로 보존했다. 여기에 낡은 가옥과 건물 사이의 골목에 상당한 수준의 그래피티로 재포장해 사진 찍기를 즐기는 10대와 힙스터, 방콕의 초창기 모습을 찾고자 하는 관광객들에게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딸랏노이는 최근 방콕시가 보다 살기 좋고 지속 가능하며 매력적인 관광의 목적지로 변모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시행한 결과 성공한 사례로 손꼽힌다. 풍부한 문화 와 역사의 현장이지만 새로운 차이나타운이 건설되고 난 후 수십 년 동안 황폐한 상태에 빠졌던 딸랏노이는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과 오래된 건물, 소기업과 저소득 가정의 공동체의 모습을 새롭게 디자인했다.
방콕시는 역사적인 건물과 구조물의 복원과 보존을 시작으로 오래된 상점가와 태국 전통 가옥을 개조해 트렌디한 카페, 레스토랑, 개성 있는 숙소로 만들었다. 물론 이 시설들은 그곳에서 살아가던 주민들이 운영하게 했다. 이 프로젝트에는 지방정부의 교육, 자금 조달 및 마케팅 지원을 제공받았고 이를 통해 지역 주민들에게 새로운 경제적 기회를 창출하는 한편 지역 고유의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선순환의 구조를 만들었다.
딸랏노이가 성공한 도시재생의 사례로 떠오르는데 시각적으로 공헌한 것은 공공예술이다. 거리 벽화부터 조각품 및 설치물에 이르기까지 딸랏노이는 방콕에서 최고의 공공예술을 선보이는 쇼케이스이자 공공예술이 지역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다.
이 지역의 벽화는 아마추어들이 단순하게 비어있는 벽과 거리를 메운 것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태국과 외국의 예술가들이 이곳에 일시적으로 머물면서 작업한 벽화는 공공예술의 차원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했다. 칙칙한 콘크리트 건물은 캔버스가 되고 예술가들은 색을 더하고 문화를 창출했다. 이곳의 벽화들은 중국인들이 이곳에 정착했을 당시의 모습과 전통적인 태국의 민속을 묘사했고 더러는 참가한 예술가의 개성을 발휘한 추상적인 미술도 함께 존재해 다양성과 진정성을 한꺼번에 구현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주태국 포르투갈대사관 담장의 벽화다. 포르투갈의 거리 예술가인 빌스가 직접 방문해 작업한 이 벽화는 딸랏노이의 공공예술이 얼마나 공을 들였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마을 입구에서부터 역사적 전통성을 지닌 건물을 존속시키고 곳곳에 당수나무에 무속의 흔적이 남은 민속신앙을 보존했고 무너져 가는 건물에 예술적 감성을 덧씌워 감성 카페나 레스토랑, 숙소로 재생해 방콕에서 가장 뜨거운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는 딸랏노이는 현장의 역사와 문화가 얼마나 강렬한 감동을 주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콘텐츠는 한수원(주) 월성원자력본부와 함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