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집권 이후 최대의 정치적 위기에 빠졌다. 국민들이 싫어할 게 뻔한 연금 개혁의 칼을 빼 들었기 때문이다. 프랑스 정부가 추진하는 개혁의 골자는 연금 수급을 시작하는 정년을 62세에서 64세로 늦추고 연금 100% 수령을 위한 노동 기간을 42년에서 43년으로 늘리는 것이다. 한마디로 받는 연금액은 같은 데 일은 더 하라는 것이다.   마크롱 대통령이 이처럼 자신의 정치생명을 건 도박을 감행하는 것은 프랑스의 연금 구조가 현 상태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프랑스는 유럽 주요국 가운데 연금 수령 연령이 가장 낮고 소득대체율은 75%에 육박한다. 우리나라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은 40% 수준이다. 그는 1차 임기 때도 연금 개혁을 추진했다가 대대적인 파업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논의를 일단 중단했으나 재선 과정에서 다시 연금 개혁을 공약으로 제시한 바 있다. 야당이 총리 불신임을 추진하고 시위 현장에서 '대통령 하야' 구호까지 터져 나오는 상황에서 마크롱 대통령이 끝까지 소신을 관철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프랑스 정국이 연금 개혁이라는 정책 이슈로 소용돌이 속에 빠져 있는 사이 우리 정치는 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 여당의 대통령 친정 체제 구축, 친일·반일 논쟁 등 정쟁 이슈 일색이다. 그만큼 다른 국가 중대사에 대한 준비가 잘 돼 있다면 다행이겠으나 실상은 정반대다. 연금 개혁만 하더라도 그 시급성이 프랑스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 1월 발표된 국민연금 재정 추계에 따르면 적자 시점은 2042년에서 2041년으로 1년, 고갈 시점은 2057년에서 2055년으로 2년 또 앞당겨졌다. 더욱 심각한 점은 저출산·고령화가 숨 막힐 정도의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적립금이 바닥나더라도 일부 선진국처럼 그해에 걷은 돈으로 연금을 지급하는 소위 '부과 방식'을 도입하면 된다는 주장도 있으나 지금 같은 출산율로는 턱도 없는 일이다. 이처럼 위태로운 돛단배가 절벽을 향해 가는데도 정부, 국회 어디 하나 총대를 메고 나서는 곳이 없다. 연금을 교육, 노동과 함께 3대 개혁 과제 중 하나로 내걸었던 윤석열 정부는 대통령 직속 공적연금개혁위원회 설치 공약을 사실상 철회했고, 공을 넘겨받는 국회에서의 논의는 지지부진 그 자체다.   내년 총선을 거쳐 대통령 임기가 중반을 넘기면 개혁 동력이 사라질 공산이 크다. 당장 나서지 않으면 나중에는 더 큰 부담을 떠안게 되고 아예 손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 주판알만 튕기며 머뭇거리다가 미래 세대의 원망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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