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렌다 (달력) 상으로 24절기 가운데 두 번째 계절인 양력 5월 6일인 입하를 시작으로 7월 23일 대서까지를 여름이라 한다. 여름의 대명사를 하얀 치자꽃이 피고, 우거진 나무 그늘과 꽃다운 풀이 무성한 녹음방초의 계절이다. 여름은 하나의 꽃 대궐, 시들 줄 모르는 영원한 꽃다발이다. 여름은 날고 싶고, 뛰고 싶은 시즌이다. 봄을 여성의 철이라면, 여름은 남성의 계절이다. 그리고 봄을 웃음의 때라고 하면 여름은 힘의 때라 한다. 생명의 큰 에너지의 원천으로, 많은 에너지를 공급받는 시절이 곧 여름인 것이다. 여름을 두고 개방의 절기라는 것은 열려있고, 개방된 까닭이다. 가정마다 닫힌 창(창문)이 활짝 열리고, 확 트인 여름 풍경은 외향적이고 양성적이다. 여름의 숲은 푸른 생명의 색조를 드러낸다. 그리고 숲속에는 벌레들의 음향으로 가득 차 있다. 은폐가 없고 침묵이 없는 여름의 자연은 푸른 파도처럼 싱싱하다. 풍요한 여름, 비가 개인 날/ 맑은 하늘이 못속에 내려와서/ 여름 아침을 이루었으니/ 녹음이 한 장의 종이가 되어/ 금붕어가 시(詩)를 쓴다. 사람들은 모두가 더위에 괴로워하는데 여름은 해가 길어 할 일이 많아서 좋다는 여유도 있다. 절기로 보아서는 여름도 중간이라고 하나, 아직 봄의 때를 온전히 벗지 못한 첫 여름. 물줄기 같이 좔좔 퍼붓는 햇볕, 푸른 하늘을 수놓는 금빛구름, 부드러운 바람, 무성한 나뭇잎, 타는 듯이 붉은 꽃, 훈훈한 습기를 머금은 해풍이 쏴하고 뜰에 가득 찬 녹음을 뒤흔들고 있다. 유월은 모든 가능성을 산출하는 계절, 천지에 활력이 넘치고 있다. ‘유월이 오면’이란 시를 쓴 부리지스는, 유월이 오면 그땐 온종일/ 나는 향긋한 건초 속에 님과 함께 앉아/ 산들바람 부는 하늘에 흰 구름이 지어 놓은/ 눈부시게 높은 궁전을 바라보며/ 그대와 함께 노래를 부르노라./ 약간의 바람에도 흔들리는/ 일엽편주 배를 타고 창망대해로 떠나가보련다.7월은 태양의 달이다. 밝고 뜨겁고, 건강한 계절-태양은 절망을 모른다. 일렁이는 바다 위에서, 푸르디 푸른 초목 위에서, 가난한 사람이나, 외로운 사람이나. 모든 사람들이 모여 사는 그 도시 위에서 칠월의 태양은 아름답기만 하다. 폭풍이 치고, 삶은 오직 가난해도, 젊음과 열정을, 건강과 모험을 저버리지 않는 7월, 그 속에서 생의 보람을 만끽하는 7월의 태양으로 살고 싶은 인생으로 남으리라. 더위가 최고도에 이르는 달이 7월로 청포도가 익어가는 계절이며, 유월이 황금이라면, 칠월은 놋쇠의 달로 강과 바다가 그리운 햇볕이 풍부한 낭만의 계절이라 한다. ‘분노의 포도’와 ‘에덴의 동쪽’을 쓴 미국의 작가 스타인 벡은 나뭇잎은 내리 누르듯 육중하고, 살이 쪄서 우둔하고, 질식하도록 빽빽하고 새소리는, 우러나는 정열이 없는 허황한 노래 같이 들린다. 음력 7월의 딴 이름을 오추라 함은 가을을 기다린다는 뜻이라 할까. 타다 남은 볏불 같은 8월은 열기의 기승이 최고에 이른다. 시인 박두진의 ‘팔월의 강’에 8월의 강이 손뼉친다./ 8월의 강이 몸부림친다./ 8월의 강이 빈번한다./ 8월의 강이 침체한다./ 강은 어제의 한숨을, 눈물을, 피 흘림을 기억한다./ 어제의 분노와, 비원과, 배반을 가슴에 지닌다. 강은 8월의 강은 유유하고 왕성하다./ 늠름하게 의지한다./ 깃발을 날리며/ 망망한 바다를 향해 전진한다./8월의 절정은 꽃이다. 꽃은 하나님이 지으신 가장 아름다운 산물인데 영혼을 넣어 주실 것을 깜빡 잊으신 것 같다. 꽃이란 사랑의 가장 속임 없는 언어이다. 자연이라는 대예술가는 평범한 꽃들을 누구의 눈에나 볼 수 있게 만든다. 한 송이의 꽃은 우연히 나뭇가지에 피는 것이 아니다. 온 그루에 모인 정이 필연적으로 터져서 유기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꽃마다 사연(꽃말)이 있다. 금잔화-이별, 나팔꽃-애정, 물망초-진실한 애정, 장미-열렬한 사랑, 해바라기-숭배·오만의 상징으로 모두가 여름 꽃이다. 여름은 언제나 물에 잠긴 채 풍요한 모습으로 여운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