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선수들의 꿈이라는 감독의 자리에 오른 지 열흘도 안 됐지만, KBO리그 최초 1980년대생 사령탑인 KIA 타이거즈 이범호(42) 감독은 똑 부러진 발언으로 새로운 리더십을 예고했다.호주 캔버라에서 진행한 KIA의 1차 스프링캠프 도중 지난 13일 타격 코치에서 감독으로 승격된 이 감독은 2차 훈련지인 일본 오키나와현으로 넘어가기 위해 일시 귀국한 21일, 인천공항에서 처음으로 전체 언론을 대상으로 감독 인터뷰를 했다.선수와 코치들에게 보내는 '무한 신뢰'가 인상적이었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는 장면에서 이 감독을 지도한 김인식 전 한화 이글스 감독과 김기태 전 KIA 감독이 겹쳐 보였다.김인식 전 감독은 '믿음의 야구'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옆집 형처럼 푸근한 김기태 전 감독은 LG 트윈스와 KIA 사령탑 시절 소통의 대명사로 통했다.
 
이범호 감독은 김인식 전 감독과 한화에서 2004∼2009년 6년간, 김기태 전 감독과는 KIA에서 2015∼2019년 4년 남짓 호흡을 맞췄다.2000년 한화에서 데뷔해 10년을 뛰고 2010년 일본프로야구 소프트뱅크 호크스를 거쳐 2011년부터 KIA에서 9년을 더 누빈 이 감독은 현역 때 꾸준히 홈런을 친 장타자다.특히 김인식 전 감독이 지휘하던 시기 4년 연속 20홈런 이상을 쳐 한국을 대표하는 슬러거로 발돋움했고, 김기태 전 감독과 의기투합하던 때에는 2016년 시즌 최다 홈런(33개)을 날리고 이듬해에는 프로에서 처음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의 기쁨을 누리는 등 두 전직 감독과 좋은 궁합을 이뤘다.두 전 감독에게 크게 영향을 받은 듯한 이범호 감독의 신뢰와 소통의 리더십은 문답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이 감독은 먼저 "난 초보 감독이지만 우리 선수들은 베테랑"이라며 "선수들을 믿고 즐겁게 해나가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또 많은 이들이 KIA의 취약 포지션으로 1루를 거론하는 것을 두고도 "우리 1루수 경쟁 선수들의 실력이 다른 구단 선수들보다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다른 구단 선수들 보다 자신의 포지션에서 충분히 잘할 수 있는 선수들이 우리 팀에 모였다"고 평했다.
 
장타자로 키울 변우혁과 외야수에서 1루수로 전환을 시도하는 이우성의 경쟁력을 높게 친 셈이다.이 감독은 아울러 "항상 감독은 약점이 없다고 생각하고 팀을 운영해야 한다고 본다"며 자신만의 확고한 철학도 밝혔다.타격 코치 시절처럼 '탈권위' 행보도 이어가겠다고 약속했다.이 감독은 "외국인 선수, 젊은 선수, 고참 선수들에게 스스럼 없이 다가가겠다"며 "팀이 연패에 빠지고 분위기가 안 좋다고 해서 그 분위기 자체를 다운시키고 싶은 생각은 솔직히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만큼 선수들의 능력과 자존심을 믿는다는 뜻으로 읽혔다.
 
이 감독도 선배 감독들처럼 초보의 통과의례인 시행착오를 숱하게 겪을 것이다.다만, 팀을 운영하는 확고한 원칙이 있느냐 없느냐는 천양지차의 결과를 낳는다. 믿음과 소통, 조율의 3대 원칙을 공언한 이 감독의 KIA는 희망차게 출발했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