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전면은 봉화군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형은 야산과 낮은 구릉지로 형성된 중산간지다. 해발 350m~400m 지역에 취락을 이루고 토질은 주로 사질 양토로 형성돼 있다.주민들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고 지역은 동서로 길게 이뤄져 있으며 영주~울진 36번 국도와 영주~강릉 영동선 철도가 동서로 중심부를 통과하고 있다.  31, 35, 36번 국도가 교차되는 지역으로서 교통의 요충지다. 조선시대 순흥부 와단면과 안동부 중춘양면에 편입된 이후 1914년 부군 폐합 시 법전면으로 개칭, 1973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소로리가 춘양면으로 편입됐다. 법전, 풍정, 척곡, 소지, 소천, 눌산, 어지 7개 법정리가 있으며 13개 행정리, 59개 반, 46개의 자연부락이 있다.  옛부터 집성촌을 이뤘던 곳으로 정자, 고가옥 등 지정문화재가 많으며 특산물로는 한약우, 토마토, 사과, 고추 등이 있다. 2024년 10월 기준 1133세대에 1890명이 생활하고 있으며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954명으로 50.4%를 차지하고 있다.법전면은 봉화군의 중심에 위치해있으면서 가장 봉화다운 모습과 정신을 간직한 전통의 유형, 무형의 문화와 개발되지 않은 자연을 간직한 보석 같은 곳이다. 백두대간의 정수인 태백산을 진산으로, 문수산을 배산으로 하고 있다. 북으로 태백산과 남으로 청량산의 사이에 자리잡아 있는 복된 땅으로 알려져 있다.마을 유래를 살펴보면 먼저 법전리는 1리와 2리로 나눈다. 법전1리는 용동, 단패, 정자골, 성재미, 음지마, 면소재지, 부지골, 서머이로 이뤄져 있다. 2리는 황새모랭이, 모랫골, 붓든, 새랭이마을이 있다. 법전리에는 정자가 세 곳이나 있다. 그중 경체정은 법전에 입향한 진주강씨 잠은공 강흡의 현손이며 관찰사를 지낸 법천 강윤, 완, 한 삼형제의 지극한 우애와 높은 학덕을 추모하기 위해 강윤의 증손자로 철종 때 병조참판을 지낸 유하 강태중이 1861년 건립했다.국내 정자 건축물에서 백미로 꼽히는 경체정은 요란하지 않으며 초라하지 않고 수기의 정신을 잘 표현해내는 겸손한 아름다움과 뒷산 학산의 왼쪽 날개 끝자락에 자리 잡아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절제된 우아함을 느낄 수 있다. 경체정의 현판은 추사 김정희가 썼다. 정자는 정면 2칸, 측면 2칸의 정방형이고 전면 2칸은 누마루이며 후면 2칸은 방으로 꾸며졌다. 누마루 전면과 측면은 4분합 들어열개문을 달았고 뒷면은 2칸의 방으로 모두 누마루와 연결된다. 법전의 정자들은 모두 창호를 닫으면 외부와 폐쇄되는 구조를 갖추고 있어 개방과 폐쇄의 이중적 구조로 돼 있다.  이에 대해 ‘법전의 마을과 사람들’을 지은 강필구 법전권역운영위원장은 “공부와 쉬는 공간을 구분하고 외부와의 차단으로 한기를 막고 자기만의 공간을 나타내는 집중성을 높일 수 있다”며 “변화와 생성의 경이로움을 안고 있는 경체정은 경북도 문화재로 등재돼 있는 이오당, 뇌풍정과 함께 그 뜻과 정신을 계속 이어가야 한다”고 말했다.척곡리는 1리와 2리로 나누며 1리에는 양지마을, 늘구리, 건문골의 마을이 있고 2리는 중간들, 멋질, 재챙이, 삼의실, 장고개, 개금두들, 버드나무골, 관터의 마을들이 있다. 이곳 마을에는 공자의 사상과 가르침을 연구하고 실천하는 학문인 유학을 가르쳤던 법계서실이 있다.서실은 평생을 위기지학에 힘써온 선비가 그 성취한 바를 체계있게 가르쳐 후학 양성을 위한 전문 교육기관으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법전의 인재산실로 명성이 자자했던 곳이다. 법계서실의 주인은 해은 강필효(1764~1848) 선생이다. 해은 선생은 학문으로 조정에 천거돼 정3품 통정대부에 승차하는 영광을 얻었다. 선생은 공자의 배우는 즐거움과 인을 실천하는 선비의 도리를 스스로 엄격하게 실천하며 과재 성근묵과 성수묵 같은 걸출한 인재를 배출했다.서실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기와집이다. 내부에 단칸 마루방을, 정면과 양 측면에는 퇴칸 마루를 돌렸다. 사면 벽은 판벽으로 처리했고 정면은 쌍여닫이문을 설치해 폐쇄적인 공간으로 구성했다.  척곡리에는 100년의 역사를 지닌 항일운동의 숭고한 뜻을 담은 척곡교회가 있다. 교회 예배당과 교육시설인 명동서숙은 1909년 건립됐다. 교회는 예배당을 넓게 지어 가운데에 광목으로 장막을 치고 남녀 교인들이 자리를 나눠 예배를 드렸다. 출입문도 양쪽으로 따로내어 서로 얼굴을 보지 않았다. 이런 구조는 ‘남여칠세부동석’의 유교적 관념이 그 시대에 여전히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1930년 교회당이 무너져 예배가 중단됐다가 1936년 ‘김종옥 총간사가 복원했다’는 상량문이 남아있다. 교회당과 별도로 명동서숙을 4칸의 초가집으로 지었는데 3칸은 교실로, 1칸은 기숙사로 사용했다. 당시 명동서숙의 초대 훈장은 장복우 선생이 맡았다.척곡교회는 지난해 6회째 ‘나라사랑 음악회’를 열어 “1910년의 국치일(8월 29일)을 잊지 말고 나라의 번영을 위한 우리의 결의를 다지자”는 의미로 행사를 주최하고 있다. 이외에도 법전면 풍정리에는 전통재료의 수급관리와 보급확대 및 산업화 지원을 위한 전문기관인 국가유산수리재료센터가 있다. 센터는 올해 10월 개관식을 갖고 전통재료에 관한 사업의 종합적·체계적 수행으로 전통재료 활성화를 도모하고 전통재료의 수급관리, 보급확대 및 산업화를 지원하고 있다. 법전1리에서 고추, 감자 등 농사를 짓고 있는 신승열(71) 이장은 “마을 최고령 어르신이 98세로 청정지역이다보니 주민들도 모두 건강하게 화합하면서 협조도 잘 이뤄지고 있다”며 “특히 지난해 6월 집중호우 때 새벽까지 수해현장에서 주민들과 함께 마을을 지켜낸 면장님께 정말 감사드린다”고 전했다.이에 김경숙 면장은 “수해현장에서 이장님이 솔선수범해서 주민들과의 협조도 잘 이뤄져 피해 수습도 단기간 내 마무리됐다”며 “앞으로도 주민들과 소통·화합하면서 살기좋은 법전면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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