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수록된 세계사의 한 편에, 우리 민족은 수없이 많은 가난과 당쟁, 그리고 전란(전쟁)을 겪은 불운의 나라라 한다.   사랑에 굶주린 경험도 당해보았고, 인정에 메마른 체험도 느껴보았다. 고향 땅을 떠나 피란살이도 해 보았고, 일거리를 찾아 객지로 이산하며 살았던 이별의 아픔도 겪은 민족이다. 타국 사람들의 한결같은 후감으로 한국인은 인정과 애정이 두터운 국민이라 한다.   인정(人情)은 남을 생각하고 동정하는 밝은 행동의 다분한 모습을 쉽게 보이는 애심인 박애이다.   한국 전쟁 전후 서양문화의 도입으로, 기독교 교리인 한국 사랑하는 물결이 전파되었다. 한 예로, 학교·병원·고아원·양로원 등에 박애주의 사상이 한국사회의 풍속과 문화를 크게 변혁시켰다.  박애는 인류애의 정신에서 널리 자비와 동정을 베풀어 모든 사람을 다같이 존중하는 사랑이다.   그리고 뭇 사람을 차별없이 두루 사랑하는 것으로 범애 정신이라고도 한다. 주의(主義)란 사상이나 학설 또는 사물의 처리 방법 따위에서 굳게 지켜 변하지 않는 일정한 이론이나 태도이며 방침이나 주장을 말한다. 그래서 '박애주의'는, 인류는 모두가 평등하며 인종·국가·종교·계급 등의 다름을 초월하는 것이다.   같은 인간으로 서로 돕고, 신뢰한다는 주의로 '사해 동포주의'라고도 한다. 더욱이 종교적 편견이나 국가적 이기심을 버리고 인류 전체의 복지 증진을 위하여 인류가 모두 평등하게 사랑해야 한다는 주의다.그러한 박애주의 사상은, 종교에 두었으며 시대가 요구하는 절실한 사상이다.   한 마디로 박애는 평등이다. 많은 성인과 종교인들이 이러한 사상을 추구하고 실행하고 살았지만 유일의 실행자로 '아프리카의 성자'라 불리우는 인물은, 알버트 슈바이쳐라 한다.   독일계의 프랑스인-슈바이쳐는 사상가요, 신학자·음악가이며 의사이고 슈트라스부르크 대학에서 철학과 목회학을 공부한 목사였다. 어릴적부터 천부적인 재질을 보인 파이프 오르간 연주자로 활약했던 귀재였다고 한다. 그 무렵 아프리카 흑인들이 의사가 없어 고통을 당한다는 소식을 듣고 모교 의학부에서 의학을 공부한 후 아프리카 가봉(나라이름)으로 가서 병원을 차리고 의사로서 그 사명에 매진한 것이다. 슈바이쳐는 세계 2차대전 후에도 유럽으로 가지 않고 선교와 진료를 계속했으며 그는 '세계의 위인', '원시림의 성자', '인도(人道)의 천사'란 칭호를 얻게 되었다. 영예로운 '괴테상(1928년)'과 52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그의 숭고한 마음으로 활동한 노벨상 상금으로 나환자촌을 세웠다. 1960년에 가봉이 독립되자 흑인들이 슈바이쳐에 대한 외경의 마음은 변치 않아, '적도성십자훈장'을 받는 영광을 누렸다.   1965년 9월 4일 전 세계인의 애도 속에 그는 천국으로 갔다. 신학자로 '종말론적요소'를 강조했고, 철학자로서는 '칸트'를 연구했으며 목자의 윤리관인 '생명의 외경'을 주장했다. 또한 음악가로서는 뛰어난 오르간 연주자 및 제작법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고 한다.   자신의 복지나 명예를 위한 것은 하나도 없고 오로지 가난한 자, 병든 자, 나환자 돌보기에 전생을 바친 위인이고 성자라 부른다.   인정(人情)은 사람이 본디 가지고 있는 온갖 감정으로 남을 생각하고 도와주는 따뜻한 세상 사람들의 마음씨이다.   그리고 동정(同情)은 남의 불행이나 슬픔을 자기 일처럼 생각하여 가슴 아파하고 위로하는 마음씨이다. 그리고 동정금이란 남의 딱한 형편을 돕는 뜻으로 선뜻 주는 돈(금전)이다.  인정이 없으면 정의로운 사람이 될 수 없다고 한다. 소설가 이광수의 글월에, 인정을 팔아서 돈을 사는 것은 어리석은 짓(행동)이다. 네 가진 것을 다 주고라도 벗을 사거라. 목숨까지 주고라도 벗을 사고, 인정을 사라고 했다.  인정은 마치 해양(바닷물)의 흐름과 같고, 사상이나 제도는 마치 표면에 이는 물결과 같다고 한다. 남의 괴로움에 동정하는 것은 인간적이다. 그러나 그것을 구원하는 것은 신적(神的)인 것이다. 인도(人道)는 인간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이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