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기원전부터 국가라는 조직을 운영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는 서기 수 백 년 전에 이미 당시의 사상가였던 한비자(韓非子)라는 사람이 인치(人治)를 견제하는 법치(法治)를 강력히 주장하였으니, 오늘 날 대부분 서구 국가들의 법의 모태가 된 서양식 로마법에 비해, 한비자의 주장이야말로 법치의 선구적 견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한비자는 당시의 유교적 덕치(德治), 즉 인(仁)과 예(禮)에만 의존한 통치를 비판하고, 사람은 본래 이기적인 존재라는 전제하에 강력한 법과 제도적 억제의 필요성을 말하였으며, 모든 백성과 관료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법, 즉 만인(萬人)이 법 앞에 평등한 공정한 사회를 강조하였으니, 진시황(秦始皇)조차 그의 냉철한 정치철학에 깊이 감명 받아 중원 통일의 대업(大業)을 이룬 사상적 기초로 삼았다 전해진다.한비자의 말 중에 “현명한 자라도 법을 넘지 못하고, 어리석은 자라도 법 아래에서 처벌받는다.” 그리고 “신하에게 권한을 주되, 책임을 묻지 않으면 나라가 망한다.” 하였으니, 한비자의 법치는 권력 유지와 국가의 안정에 초점을 맞춘 현실주의적 정치 철학으로, 오늘날의 법치주의와 전혀 상충됨이 없다 할 것이다.그런데, 기원 후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법률가임을 자칭하던 한 사람이 오로지 ‘법과 원칙’을 내세우며 혜성처럼 등장하여 지금 우리사회를 어떻게 만들고 있는가? 누구나 저지르기 쉬운 가벼운 탈법(脫法)에는 거대한 공권력이 투입되고, 삼척동자가 보아도 알만한 무거운 범죄는 사람의 지위를 가려 덮으려 기를 쓰며, 신하에게 권한을 주되 책임은 묻지 않으니, 누가 이런 나라를 법치국가라 할 것인가? 다시 한비자의 일화 중에, 자가당착(自家撞着)에 관한 유명한 이야기가 있는데, 어떤 장수가 창과 방패를 팔면서 말했다. “이 방패는 어떤 창으로도 뚫을 수 없습니다.” 그러고 나서 또 말한다. “이 창은 어떤 방패도 뚫을 수 있습니다.” 이에 어떤 이가 묻는다. “그럼 그 창으로 그 방패를 찌르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바로 모순(矛盾)이라는 단어의 유래인데, 한비자는 특히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자를 크게 비판하며, 논리적 모순과 말장난 정치를 경계했다고 한다.여기서, 기왕 옛날 얘기가 나온 김에 "주나라의 북채(鼓)"에 대해서도 좀 소개해 볼까 한다. 옛날 주나라는 대궐 앞에 큰 북을 달아 백성이 억울할 때 누구라도 그 북을 쳐서 호소할 수 있게 하였다고 하니, 주나라 임금이 성군(聖君)으로 보일는지 모르지만, 그러나 그 북을 쳤다가 목숨을 잃은 이가 많아, 백성들은 종내 북을 칠 수 없었고, 억울한 일도 감히 말하지 못하게 되었다 하니, 오늘 날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말하면서도 무섭게 언론을 통제하는 공포정치에 비유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나는 현대 국가의 보편적 통치 이념으로 자리매김한 냉철한 법치만을 추종하는 사람은 아니기에, 한비자의 성악설(性惡說)에 기초한 법치와 달리 맹자의 성선설(性善說)에 기반 한 덕치(德治) 역시 법치와 더불어 조화를 이루어야 할 정치 이념으로 보는 사람이지만, 문제는 법치도 아니며 덕치도 아닌 지금 우리사회의 모습이 참으로 우스꽝스럽다는 것이다.‘한비자’의 법치로 세워진 진나라는 결국 법가(法家)의 발호(跋扈)로 멸망하게 되니, 이는 총과 칼로 흥한 자, 총과 칼로 망한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법치(法治)만 강조하면 인(仁)과 예(禮)가 사라질 것이며, 덕치(德治)만 주장하면 규율이 무너지기 쉽다. 우(右)는 극우(極右)로 망하고, 좌(左)는 극좌(極左)로 망한다. 천박한 정치가 천박한 사회를 만들게 되니, 우리 모두 좌우(左右)에 머물 것이 아니라 천박한 정치인부터 좀 가려내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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