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한반도 지질 사상 유례없는 ‘인재(人災)’가 포항을 덮쳤다. 집은 금이 가고, 학교는 무너졌으며, 평범했던 시민들의 일상은 순식간에 부서졌다. 그리고 7년이 흘렀다. 시민들이 기다려온 ‘국가의 책임’이라는 두 글자는 결국 항소심 법정에서는 끝내 등장하지 않았다.13일 대구고등법원이 내린 판결은 충격적이다. 1심에서 인정되었던 정부의 책임은 부정됐고, 시민들이 청구한 정신적 피해 배상도 전면 기각됐다. 법원은 “지열발전이 지진을 촉발했다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는 정작 정부 스스로 밝힌 조사 결과와는 거리가 멀다. 국무총리실 산하 조사위원회, 감사원, 검찰 수사까지… 모두가 지열발전소가 지진을 유발했음을 지적해왔다. 그런데 법정에서는 왜 이 사실들이 부정되는가.이강덕 포항시장은 항소심 결과에 대해 “시민의 상식과 법 감정에 반하는 결정”이라며 강하게 유감을 표했다. 실제로 포항지진은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다. 국책사업으로 인한 촉발지진이라는 게 이미 공적으로 확인된 사실이다. 그 피해는 무너진 건물만이 아니라, 시민들이 겪은 정신적·심리적 충격에까지 닿아 있다.시민들 50만 명이 모여 법에 호소했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법원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제 남은 건 대법원의 판단이다. 그 마지막 문이 닫히기 전까지 포항시는 정부에 공식 사과와 실질적 피해 회복 대책 마련을 촉구하며, 정의를 향한 외로운 행보를 이어갈 수밖에 없다.재판이 법리를 따지는 것이라면, 정의는 사람을 본다. 판결은 법원의 몫이지만,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것은 국가의 책임이다.그간 정부는 여러 차례 포항지진이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닌, 지열발전 과정에서 촉발된 ‘인재’임을 인정해 왔다. 수많은 보고서와 자료들이 그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으며, 지열발전 관계자들은 형사 재판에까지 넘겨졌다. 그런데도 항소심 법정에서 “국가의 과실이 없다”고 한 판단은 오히려 정부 입장과도 상충된다.이쯤 되면 시민들은 묻는다. 정부가 인정하고, 감사원이 지적하고, 검찰이 기소한 사건인데 왜 법원은 책임이 없다고 보는가. 피해는 실재하는데, 그 고통에 대해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면 과연 법은 누구를 위한 도구인가.포항시는 단순히 법적 판결에만 기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정신적 피해를 일괄 보상하는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소송에 참여하지 못한 시민까지 포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법의 판단이 멈춘 자리에서, 행정이 책임을 잇겠다는 것이다.무너진 건물은 복구됐지만, 무너진 신뢰와 마음은 아직 복원되지 않았다. ‘인재’의 피해는 물리적 손실보다 훨씬 길게 사람을 따라다닌다. 포항 시민들은 그 고통을 7년째 짊어지고 있다.법원이 외면한 시민의 눈물을, 대법원은 끝내 외면하지 않기를 바란다. 정의는 결국 사람의 얼굴을 한 채 판결문에 남아야 한다. 포항이 지금 바라는 건, 그 한 줄의 상식이다.